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하루 차이로 확진이 떴던 가족들이 격리 시설로 움직이게 되었다.
친정 엄마와 토토로, 1호와 2호는 보호자가 함께 해야 한다는 절차에 따라
친정 엄마-1호, 토토로-2호 팀으로 나뉘어 생활하게 될 것이라 했다.
같은 성별끼리 있는 것이 좋지 않겠냐 했지만, 아이들의 선택으로 나뉘게 된 것이라
이렇다 할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배웅을 했다.
하룻밤 열이 심하게 올랐던 1호는 언제 앓았느냐는 듯 에너자이저가 되어 조잘대고 있었고,
아빠와 긴 시간을 보내게 된 2호는 신이 나서 여행을 가는 기분이라 했다.
네 사람을 아침 일찍 배웅해야 했던 난,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별 일 아니야."
아이들 걱정에 한숨만 내쉬고 있자니 토토로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깨라도 토닥여 주었으면 좋으련만, 한 번만 안아보고 보냈으면 좋으련만.
이송을 해가려 들른 이들은 가차 없이 우리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접촉하시면 안 됩니다. 보호자 분 떨어지세요.
내 사람들이고 내 가족인데 무형의 힘에 의해 뺏기는 기분이었다.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괜찮으니 다녀오라 손을 흔들어야 했다.
평소처럼 덤덤히 보내주어야 무사히 다시 되돌아올 것 같았다.
"엄마-! 우리 잘 도착했어!"
걸려 온 영상통화는 평소보다 활기찬 얼굴이었다.
집을 떠나 있으면서도 겁 하나 먹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빼곡히 들어찬 아이들의 웃음에 함께 전염이 된 것인지 피식- 한 줄기 미소를 띨 수 있었다.
환기를 하고 먼지를 털었다.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면 모두 모여 식탁을 가득 메울 것 같이 굴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10여 일이 지나고 하루를 남겼던 그날.
등골이 싸한 기운에 무거운 눈꺼풀을 올리며 기시감을 느꼈다.
회사에도 아이들이 돌아오면 복귀한다고 연락했것만, 인생은 역시나 계획대로 흐르지 않았다.
잠들던 곳이 아이들과 생활하는 방이어서 그랬을까.
2주간 격리 끝에 자유를 맛보려던 우리는, 나로 인해 다시금 2주의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우리 가족들은 날벼락같은 소식에 다시금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죄스러웠고, 미안했다.
숨기고, 가리고, 버틸까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있던 자리는 가족들이 돌아와야 할 자리였으니까
"혼자서 괜찮겠어?"
돌아오는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꼭두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나를 걱정했다.
돌아와서 다시금 갇혀 지내야 할 그들이, 홀가분하게 몸만 움직이면 되는 나를 걱정했다.
욱신대던 머리도 들끓어 오른 열기도 뒤로 한채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괜찮다 말할 뿐이었다.
조용한 거리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흔적 없이 움직이고 싶었던 나는 배려심 없는 사이렌 소리에 속이 울컥 뒤틀렸다.
덜컹거리는 차에 올라 뒤틀려 울렁이는 내상을 다스리며 흔들리는 몸을 추스르는 것이 전부였다.
깨끗하게 치워두고, 지급받았던 소독용품으로 방역을 하고 나왔음에도
혹여 돌아올 이들에게 폐가 되진 않았을까 걱정이 눈앞을 가리웠다.
걱정이 깊어질수록 발열하는 몸뚱이는 빨갛게 달아올랐고,
뿜어낸 열기를 머금어가는 하늘이 얼굴과 동색을 띄어 갈 때 즈음, 내달리던 차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졌다.
길고 긴 열병의 시작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