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이별의 그날은 터무니없이 빨리 왔다.
토토로와 나는 깊은 고뇌에 빠져야만 했다.
아이들에게 이별의 기억을 심어 주어야 하느냐,
아무것도 모르는 채 ' 그저, 그랬구나 '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냐.
우리의 선택은 아이들을 친정에 보내두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이사 준비를 해야 하니까 너희들은 안산 할머니네 가 있어."
며칠간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 두고는 우리 둘이서 떠나야 하는 집과 이사 갈 집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에게는 이사 날까지 어디로 가게 될지에 대해 비밀로 하기로 했었다.
할머니네에서 1주일 정도를 생활하게 되었다는 말에,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서 가방을 챙겼다.
가지고 가서 놀 장난감도 갈아입을 옷들도 각자의 가방 속에 한가득 채워 넣었다.
그 와중에도 2호는 눈치를 보며 살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엄마, 까미도 같이 가는 것 맞지?
아이의 질문에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우리 모두 은연중에 이별을 깨닫고 있었다.
2호의 질문은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족 모두의 작은 투정이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는 적막만이 가득했었다.
마음을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운전을 하는 토토로를 바라보았다.
옆얼굴에 서려있는 심난함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먹구름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 약속이나 한 듯, 박스를 들고 정신없이 채워나갔다.
말없이 그저, 박스들을 하나 가득 메꿔나갔다.
버릴 것들, 가져갈 것들, 나눔 할 것들. 작은 것들, 애매한 것들, 필요할 것들.
여기저기 짐을 쌓아 작은 무덤을 만들어 두고는
양팔을 걷어붙이고 심란한 마음을 얹어서 봉투를 묶고 또 묶었다.
등을 적실만큼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뒤져 대었더니
생각보다 빠르게 큰 짐들이 비워져 갔다.
누가 보면 야반도주라도 하려는 사람들 마냥, 대화 한마디 없이 짐을 치웠던 우리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아 숨을 쉬었다.
"내일은 딱히 할 게 없겠는데?"
저 혼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TV를 보며 멍-한 시선으로 숨을 고르다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었던 것일까.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토토로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왜? 할 게 남았어?"
"응. 다녀와야지."
짧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토토로는 지난하게 긴 시간 속에서 오롯이 한 가지의 고민만을 하고 있었나 보다.
주섬주섬 패딩을 챙겨 입고 발을 내딛는 토토로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함께하는 것. 그저, 그뿐이었다.
"같이 가."
"... 아니야, 혼자 다녀올게."
"안 괜찮을 걸 아는데 어떻게 혼자 보내. 같이 가요."
"어차피 마음먹은 건데, 혼자 다녀오는 게 나아."
씁쓸함을 삼켜 넘기며 자신의 마음처럼 검고 검은 까미를 안아 드는 토토로였다.
까미의 등 언저리를 쓰다듬는 손길에는 복잡하고 아련한 아픔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저를 떠나보내려는 우리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지, 까미는 가르릉- 가르릉- 기분 좋은 울음을 내고 있었다.
아니다. 까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울음이 아닌, 서럽고 속상한 속울음이었을 것이다.
반짝이던 까미의 어여쁜 눈동자에는 스미듯 맺혀버린 물방울이 얹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눈을 맞추고 온기를 나누던 둘은, 처음 집으로 왔던 날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문을 나섰다.
그렇게, 까미는 넓고 넓었던 어둠으로 다시금 스미게 되었다.
이사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정신없던 이사 후, 처음으로 밤을 보내는 날.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방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뛰어놀더니
밤이 되었음에도 잠을 청하려다 말고 하나, 둘씩 거실로 나왔다.
"엄마... 까미는 잘 있겠지?
1호의 질문 아닌 질문에 밤공기를 타고 들어 온 슬픔이 짙게 내려앉았다.
우리는 아직 정리가 다 되지 않은 집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어딘가 숨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까미를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보석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귓가에는 희미하게 남은 까미의 골- 골- 노래가 아련하게 맴돌았다.
까미야- 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거실 한편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는 잠을 청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훌쩍, 훌쩍
2호의 슬픔이 터져 나오자, 1호와 3호는 말없이 다가가 서로의 품에 기대어 온기를 나눴다.
갑작스럽게 맞닿드린 이별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우리 가족의 어깨에 톡, 톡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몸이 아리도록 힘든 이별을 버텨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