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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Mar 31. 2022

봄, 그리고 청춘을 함께 한 승희에게

3월의 마지막 날이고 밖엔 어느덧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지난 토요일, 우리 만났을 때 벚꽃이 만개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주더니 그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지더라. 우리 그날 계획에 없었던 꽃구경 잘했다 그지? 우리는 만날 때 대체로 함께 도모할 무언가가 있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그냥 만나서 한동네 사는 친구처럼 놀았더라. 너는 구수한 미소 라멘, 나는 칼칼한 돈코츠 라멘. 바삭한 치즈 고로케까지 야무지게 먹고 여유로운 공원 산책. 갑작스레 치솟은 기온에 겉옷을 벗어서 손에 들었고 공원 한편에 곧게 뻗은 메타쉐콰이어 길이 마음에 든다며 다시 한번 걸었다 그지? 급할 것 없어서 여기저기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조용하고 새침한 매력이 있는 카페를 골라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어. 그리고 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따뜻한 카페라떼. 땀도 식히고 숨도 돌리면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지 한참을. 그 사이 오후 해가 기울고 다시 기온이 떨어져서 의자에 걸쳐뒀던 옷을 다시 챙겨 입고도 또 한참을 더 이야기하다 돌아왔어. 그날 네가 ‘참 좋다’를 꽤 여러 번 읊조렸던 거 알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 시간들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느낌이어서 나도 참 좋더라. 그런데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은 거 있지. 그날 못 찍었던 사진을 글로 나마 찍어 두고 싶었어. 가끔 꺼내 읽어볼 때면 그날의 하늘과 꽃 온도와 습도까지 생각나서  한 번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 집으로 와서 도너츠와 홍차로 그날의 데이트를 마무리한 것까지 적어둬야겠다.


친구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생각이 난다. 늘 네 명, 다섯 명이 함께 만나다가 우리 둘만 덜렁 남겨졌을 때. 처음엔 좀 낯설었던 것 같아. 여섯 명이 뭉쳐 다녀도 둘씩 혹은 셋씩 미묘하게 더 가까운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 둘은 그만큼 허물없이 친하진 않았잖아.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둘이서 시간을 채운다는 게 좀 버겁게 느껴지더라고. 네 명이서 나누어 채우던 시간을 두 사람이 책임지게 되었으니 처음엔 좀 숨이 찼어. 하지만 곧 익숙해졌고 참 많은 시간을 둘이 함께 했지. 한 5년을 둘이서 잘 놀았던 것 같아. 베스트 프렌드가 되기 충분한 시간이었지. 우린 거의 둘 중 하나였어. 책을 읽거나 여행을 가거나. 죽이 참 잘 맞았어 그지? 그러다 너마저 결혼을 하게 되고 나 혼자 남게 되었는데 그때 기분이 잘 생각이 안 나. 분명 많이 외로웠을 텐데 그때의 나는 너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웠을까? 다 잊어버렸지만 적당하게 상실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또 달라진 삶에 적응했겠지. 시간은 계속 흘렀고 혜령이도 이만큼 커서 다시 그때처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난 토요일에 나눈 이야기들 중에 현아가 직행버스를 타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 지하철 환승 코스로 등교를 한다는 얘기가 참 좋았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스무 살 때 200원 아끼려고 직행버스 안 타고 꼬불꼬불 완행버스를 타고 먼 길을 돌아 학교를 갔었거든.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한 달 용돈 20만 원 받아서 차비에 밥값까지 쓰고 나면 주머니에 몇 만 원 남지 않았어. 그 몇 만 원을 쪼개고 쪼개서 머리 염색도 하고 신발도 사 신고 하느라 계산기를 얼마나 두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때가 슬프거나 싫지가 않아.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세상 제일 좋아했던 그때가 참 이쁘고 애틋해. 학생 식당에서 1100원짜리 만둣국 정식을 사 먹을 땐 대접을 기울여서 바닥까지 긁어먹었어. 시험 기간이어서 우리를 위하고 싶은 날엔 학교 밖으로 나가 25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사 먹는 호사를 누렸고. 그땐 궁핍해도 후져 보이지 않는 때잖아. 궁핍을 경험해도 괜찮은 나이였어.      


20대 때는 돈이 모자랐고 40대가 되니 시간이 모자라. 서로가 가진 재산이 달라. 20대 땐 돈 대신 시간을, 40대는 시간 대신 돈을 쓰는 쪽을 선택하게 돼. 20대 때는 시간에 덜 애틋했어. 돈 대신 시간으로 지불할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했어. 그땐 돈 만 원이 귀했으니까. 지금은 반대잖아. 내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다면 돈 얼마쯤 더 쓰는 쪽을 선택해. 20대 땐 시간이 영원히 내 편인 줄 알았지. 급할 게 없었어. 목적 없이 어슬렁거렸어. 요즘 20대들처럼 자기 계발에 열심이지 않았고 시간을 허비했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때의 ‘허비’가 참 좋았다고 생각해. 아쉬움 없이 잘 허비했고 잘 어슬렁거렸어. 그땐 모르고 그런 거였는데 인생에서 목적 없이 어슬렁거릴 수 있는 때가 그때뿐인 것 같아. 그때 나를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멈춤 없이 달리게 했다면 지금의 편안한 마음은 없었을 거야.

     

지난번에 만났을 때 얘기했던 책 있잖아.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내게 깨우침을 주었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에 이런 구절이 있어.     


가족과 함께 있는 십 대가 몸은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지만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외관상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부재중임을 눈치챌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나는 그 여자아이가 틈을 찾아냈기를, 스스로 여가 시간을 만들어 내고 그 안으로 빠져나갔기를 , 그리고 그 내면 깊이 사유하고 느끼고 있는 중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어슬렁거리고 허비했던 시간들이 이 ‘틈’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해. 내면 깊이 사유하고 나를 탐구하기 위해 도망쳐 들어간 틈. 국어국문과여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몰라. 만약 다른 학과였더라면 분명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을 거야. 내 능력 이상의 공부를 해내느라 ‘틈’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거야. 영어 공부하고 자격증 따느라 어슬렁거릴 시간 따윈 상상도 못 했을 걸. 나는 적당히 공부하고 남는 시간은 허비하는 데 쓸 수 있어서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어.    

 

시간 허비의 총량이 있다면 20대 때 다 써버린 것 같아. 지금은 허비하고 싶어도 허비할 시간이 없잖아. 요즘 우리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아마도 ‘벌써 금요일이야‘일 걸. 아마 조금 있으면 ’벌써 12월이야‘를 말하게 되겠지. 어쩌겠어. 흐르는 시간을 붙들어 놓을 비책이 없는 걸. 하루하루 만족스럽게 사는 것 밖에 없지 뭐. 읽고 쓰고 일하고, 읽고 쓰고 일하고 그러면서. 그리고 그런 날들 중 하루, 지난 토요일 같이 목적 없이 만나서 좋은 틈을 만들면서.     


남는 시간의 반대말은 아마도 바쁜 시간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남는 시간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시간은 전부 할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항상 그래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은 삶에 점령되어 있다.... 그 무엇도 여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시간을 남겨둘 수가 없다. 다음 주면 여든 하나가 된다. 내게는 남겨둘 시간이 없다.

 


2022.3.31 틈만 나면 농땡이 부리느라 답장 늦어서 미안한 은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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