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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Aug 08. 2023

나의 여름휴가, 블루베레스트산

처음부터 여름이 좋았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스무 살 이후부터는 줄곧 여름이 가장 좋았다. 특별히 싫어하는 계절은 없어서 주변의 많은 이들이 여름을 싫어하는 계절로 손꼽을 때 좀 의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여름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그들은 여름을 좋아한다는 내 대답에 오히려 흔치 않은 기호라는 듯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어떻게 여름을 좋아할 수 있지? 그렇게 덥고, 습한 계절을?’이라며 결코 동조해 줄 수 없다는 단호함으로 선을 그었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 한 가지를 말하자면 추억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되는 사건들은 대부분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연적으로 여름에만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절의 일들은 쉬이 잊히고 여름의 일들만 각인되어 살아남은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기억의 담당자들은 사실주의 쪽이라기보다 인상주의 쪽에 가까워서 여름이라는 배경에 사심을 담아 덧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설명문이나 기록물처럼 기억할 수 없고,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사실들을 추억으로 저장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느 쪽이든 여름에 대한 기억의 편애는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여름의 특별함은 뭐니 뭐니 해도 방학 그리고 휴가에 있지 않을까. 여름방학, 단어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오르는 나의 마지막 여름방학은 아주 오래전 끝났다. 인생에 여름방학이 딱 열여섯 번밖에 없다는 사실을 열여섯 번째 방학까지 다 써버리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좀 더 일찍 카운트를 했다면 한 해 한 해의 여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려는 계획을 했을까. 인생에서 방학이 사라진 첫 여름, 방학 없는 아쉬움을 느꼈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방학과는 다른 여름휴가, 그것도 첫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서운함이 마음속에 들어앉을 자리가 없었다. 늘 그렇듯 모든 처음은 설렘이니까. ‘방학’이 아이의 여름 같은 느낌이라면 ‘휴가’는 어른의 여름 냄새가 물씬 배어 있었다. 사회생활 초년생으로서 처음 맞는 여름휴가는 여러모로 진짜 어른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실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다고 첫 휴가를 거창하고 어른스럽게 보내지는 않았다. 스물넷이었던 그때는 잠깐 서울에 머물렀을 때여서 집으로 내려와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그냥 휴가였다. 설렘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쉼’이라는 의미에는 딱 맞는 휴가였던 건 확실하다.     


여름휴가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물놀이‘가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남들은 해외여행을 계획하거나 그림 같은 숙소를 예약해서 멋진 휴가를 보내기도 하던데 예약에 취약한 나는 경쟁이 치열한 휴가철의 예약 경쟁에 감히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해서, 바다에 가서 튜브에 몸을 싣고 파도를 타거나 그늘 많은 계곡에 가서 찬물에 수박을 담그고 수박 옆에 몸도 함께 담그는 그런 풍경 정도가 내 머릿속 여름휴가의 이미지다. 그리고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런 휴가를 즐기는 것조차 아주 가끔, 드물게 있는 일이되었다. 오래전부터 나의 휴가는 에어컨이 잘 나오는 공공 도서관에 틀어박혀 낮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을 보내는 정도의 소박한 일정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다 여러 날 중 하루 정도는 경주의 한 카페로 팥빙수를 먹으러 다녀온다.   

  

몇 해 전 여름. 7월 말, 휴가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쨍쨍하고 뜨거운 햇볕에 아스팔트는 해가 져도 열기가 식지 않고 ‘폭염에 건강 주의’라는 안내 문자가 연일 날아드는 그런 날이었다. 휴가 5일 중에 3일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나니 그것도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4일째 되는 날 그와 함께 경주로 향했다. 그는 경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신라의 경주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그의 그런 면을 좋아한다. 경주는 1시간이면 가는 거리라 자주 가는데 다행스럽게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부담 없이 어느 정도의 호사를 누리고 싶은 날엔 두말없이 경주를 택한다. 그날도 특별한 계획 없이 ‘멋진 카페에 가서 커피나 한잔할까’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경주로 달렸다. 도착할 무렵 ‘경주 카페’라는 지독히 무심한 검색어에 의해 추천된 카페들 중 먹음직한 블루베리 팥빙수 사진이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둘 다 팥빙수를 워낙 좋아하고 날씨도 빙수 먹기 안성맞춤이었던지라 망설이지 않고 ‘누마루’라는 카페로 향했다.     


노란 유기에 소복이 쌓인 얼음산, 아니 블루베리 산이라고 해야겠다. 탱글탱글하고 시럽이 뿌려져 반질반질한 블루베리가 산딸기 몇 알을 품고 겨울을 정복한 여름인 양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분명 기세등등 쌓여있는 블루베리 아래엔 정복당한 눈꽃얼음이 소리 죽여 짓눌려 있을 팥빙수를 각자 한 그릇씩 받아 테이블에 앉는다. 등정을 마치고 꼭대기에 깃발을 꽂는 등산가라도 된 듯 팥빙수의 꼭대기에 숟가락을 꽂으니 블루베리 알맹이들이 마구 흘러내린다.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블루베리를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 가며 먹기 시작한다. 차갑고 무디게 달콤하다. 과육은 토실토실해서 알갱이는 작아도 쫀득쫀득 씹는 맛이 있고 한두 입에 곧 입안이 시원해진다. 이내 얼음이 정체를 드러내면 조심조심 얼음과 팥과 블루베리를 적당한 비율로 조합해 먹는다. 실로 여름과 겨울의 황금비율이다. 그는 섞어 먹는 파지만 나는 섞지 않고 따로따로 조합해 먹는 파다. 팥빙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먹는 방법의 취향이 달라 둘이서 한 그릇이면 될 양을 우리는 각각 한 그릇씩 차지했다. 숟가락질이 거듭될수록 눈꽃얼음은 녹고 블루베리는 준다. 팥빙수 그릇이 비어갈수록 입안은 얼고 뱃속은 차가워졌다.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런 피서다. 뜨거운 여름을 뒤집어 쓰고 들어간 곳에서 꽁꽁 언 겨울을 담고 나왔으니 이거면 충분하다.  

    

여름만 되면 극장가에 국내외의 다양한 공포 영화들이 개봉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무서운 영화는 질색이라 영화 시작 전에 예고편으로 나오는 무서운 영상에도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여름엔 공포 영화를 봐줘야지’라고 말했다. 내가 ‘여름엔 팥빙수를 먹어 줘야지’라고 말할 때와 같은 말투로. 그 이후로 몇 년간 여름만 되면 그 친구와 함께 일부러 공포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공포 영화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여름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라는 소설집에 ‘자유이용권이 있다면 자유롭게 이용하기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순간을 불평하면서 보내지 말고.’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 모두에겐 공평한 여름 이용권이 주어진다. 여름을 좋아하긴 힘들지 몰라도 충분히 즐겁게 이용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아참, 이건 여담인데 팥빙수를 함께 먹는 그는 여름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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