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다녀오면서 추억을 쌓아간다.
가을이 깊어간다.
'올 한 해 내 마음에는 무엇을 담았을까?'
'무엇을 내려놓았을까?'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내가 지원하고 있는 한 분이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직접 풀칠해서 봉투도 만들었다고 한다. 손 편지글을 얼마 만에 읽어보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고 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 분과의 관계가 영화필름처럼 지나간다. 울고 웃으며 함께 한 시간들이 감동으로 돌아왔다.
그분의 마음을 내 안에 담은 걸까?
오늘은 자연을 마음 한가득 담고 싶어서 떠난다. 삶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았다.
완주 고종시 마실길로 140번째 행발모 발걸음을 옮긴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조금 특별한 트레킹이다. 친동생과 다름없는 명이와 140번째 행발모를 함께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트레킹 경험이 적어서 약간 염려되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마실길인데 이렇게 길 수가 있나?' 꽤 거리가 느껴지는 고종시 마실길이다. 고종시는 감 이름이다. 고종에게 진상했던 감이라고 해서 고종시라고 한다. 낯선 이름이다. 상주 곶감이 최고인 줄 알았더니 고종시 곶감은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단다. 바로 그게 단점이라고 하니 얼마나 맛있으면...
낙엽이 곱게 물들어간다. 떠날 준비를 참 예쁘게도 한다. 파란 잎사귀가 뚝뚝 떨어진다면 가을이 슬플 텐데… 곱디고운 단풍은 카펫이 되어 우리의 발걸음을 반겼다.
행복하다. '이리도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 가는구나!'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완주 가는 길에 익산에 있는 유니크 바이오텍에 들러서 프로폴리스에 대해서 들었고, 귀한 선물도 받았다.
벌꿀과는 다른 프로폴리스, 프로폴리스의 유효한 성분을 있는 그대로 추출하기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연구로 일관했다니 대단하다.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항염, 항산화, 항암효과 등을 포함해서 150가지가 넘는 성분을 가지고 있다니 놀랍다. 한 가지 연구를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해 온 허용갑 대표님이 존경스럽다.
위봉산성을 지나서 위봉폭포를 만났다. 폭포는 경쾌한 가을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장엄한 선율과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가을 소풍은 도시락이다. 친구가 담근 얼갈이 겉절이가 일품이다. 행발모 올 때마다 김치를 담아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고맙다. 김밥, 두부, 빵, 밥과 반찬, 고구마, 삶은 계란, 과일 등 모두 펼치니 만찬이 따로 없다. 정겨운 점심시간이다.
음식도 맛있고, 대화도 맛있다.
본격적으로 접어든 고종시 마실길의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 순간 바람이 땀을 데리고 간다.
동생은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힘들 텐데도 잘 따라온다.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며 연신 감탄을 한다. 이런 길을 또 언제 와 보냐고 하면서 말이다. 좋아하니 내 마음도 덩달아 행복하다.
송곶재를 오르며 시향정을 만났다. 잠시 휴식하며 남은 간식을 꺼내서 돌렸다.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한숨 돌린 후 다자미 마을까지 걸어갔다. 시향정에서 내려가는 길에 주인이 없어 보이는 고종시를 만났다. 잎은 거의 떨어지고 감만 대롱대롱 한가득 달려있다. 직박구리, 산까치, 산비둘기 등 산새들이 좋아할 만한 식량이다. 행복한 재잘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오늘 특히 기대한 곳, 바로 완주 산골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만 시인 댁에 도착했다. 최근에 <흘러가는 기쁨>이라는 시를 출간했다.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시집 두 권에 사인도 받았다. 잔디밭 마당은 풀 한 포기 없이 정갈했고, 정성껏 쌓아 올린 돌담 안쪽으로 상추와 배추가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오늘 김용만 시인님을 만나서 마음이 더 풍성하게 하루를 보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BTS도 다녀갔다는 오성제에서 사진도 찍고, 그곳 이장님의 마을기업에 대한 열띤 해설도 잠시 들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지 자꾸 우리의 발길을 붙잡지만 2만 보가 훨씬 넘도록 걸은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부지런히 식당으로 향했다.
순두부찌개와 두부 빈대떡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서울로 향했다.
30명이 넘는 행복쟁이들은 약간의 피곤함이 비치지만 환한 얼굴빛은 오늘도 참 행복했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나는 오늘, 깊어가는 이 가을을 한가득 마음에 담아왔다.
사진 출처 한승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