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투스
스피노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그것이 본래의 자신다운 자신으로 있으려는 힘을 '코나투스'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의 본질이 그 사람의 외모나 직함이 아니라 코나투스에 의해 규정된다고 믿었다.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의 코나투스를 높이면 '좋은' 것이고 훼손한다면 '나쁜'것이다.
만일 당신이 자연 속에서 활력이 솟아나는 체질이라면 자연은 당신의 코나투스에 '좋은' 것이다.
반면에 고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자연 속에 들어가 소외감을 느낀다면 자연은 코나투스에 '나쁜'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자신의 코나투스를 한껏 끌어올리는지 혹은 반대로 훼손하는지를 경험적 감각으로 찾아내야 한다.
우리 개개인의 코나투스는 독자적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일을 시도하려 그 결과가 자신의 코나투스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고
자신 나름대로 좋다, 나쁘다 하는 판단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스피노자는 설파했다.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 중에>
물이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 고여 썩게 된다면,
물은 제 '멋'대로 살지 못하고 그저 증발하게 돼버릴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처럼 저마다 자기의 속성을 가지고 산다.
누군가는 열정이 넘쳐나고, 성취지향적인 사람이라면 '도시'에서 사는 것이 그의 코나투스에게 '좋은' 것일 테고
누군가는 차분하고, 정적이며 고요한 것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면 '시골'에서 사는 것이 그의 코나투스에게 '좋은' 것이 될 것이다.
서로 반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쁜' 것이 되겠지만.
한편 이 코나투스는 <다양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이 가지는 속성이 다르다면, 코나투스에게 '좋은' 것도 물론 다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사람들을 있을지라도,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사회를 둘러보면 굉장히 비슷한 혹은 거의 똑같은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몇몇 튀는 속성들은 자기의 코나투스에 맞게 사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세계관이 통일화된 모습을 보니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내가 보는 시선에서는 세계가 이상하다고 보인다.
정상적이진 않다. 초, 중, 고, 대, 취업, 결혼... 누구나 아는 한국의 루틴이지 않는가.
이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 친구는 '특이한 아이'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코나투스의 말을 기반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그 시선은 오히려 정반대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코나투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까?
나는 지금 코나투스를 기준으로 삶을 영위하는지 혹은 외부 조건에 의해 삶을 선택하고 있을지 말이다.
어떤 삶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규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꼭 범주화된 사회의 세계관을 선택하진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하다.
당신의 코나투스가 더욱 빛을 발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