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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디타 Dec 17. 2022

인간관계의 비밀을 파악하라

나는 내 안에서 타인을 보고, 타인 속에서 나를 본다


모든 관계의 거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깨어 있음을 발견한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당신을 거부한 사람 모두 당신의 거울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에게 마음이 끌릴까? 물론 자신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겠지만, 그런 태도에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또한 그런 특징을  많이 드러낼  있으리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성격 중에서 싫어하는 부분을 똑같이 갖고 있는 사람들을 거부한다.

따라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들이 당신과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특징이다. 만일 당신이  성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자신 속에서 그런 성격을 보아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 타인에게 내 모습이 있음을 인정하라 >

타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있다는 것을 깨달을 , 모든 관계는 의식의 진화를 위한 수단이 된다. 그리고 의식이 진화하면서 우리는 자각이 확장된 상태를 경험한다.

우리가 동시성 운명을 경험할  있는 것은 이렇게 자각  확장된 상태에 있을 때다. 이때 우리는 비 국소적 영역에 도착한다.

다음에 당신이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린다면, 무엇 때문에 끌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사람의 아름다움, 우아함, 고상함, 영향력, 권력   지성에 끌리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성격이 당신 안에서 꽃피고 있음을 알라. 그런 느낌에 정신을 집중하라. 그러면 더욱 완전하게 자기 자신이   있다.

당신을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있다. 더욱 완전하고 진정한 자아가 되려면 당신은 자신 안에 있는  매력적인 성격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우주의 본성은 정반대의 가치들이 공존하는 것이다. 당신이 내면에 겁쟁이를 갖고 있지 않다면 용감할  없다. 당신이 내면에 인색함을 갖고 있지 않다면 관대할  없다.

당신에게 사악한 면이 없다면 미덕이 있을  없다.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이런 어두운 면을 부인하는  삶의 많은 부분을 소비한다.

그리고는 결국 이런 어두운 특성들을 당신  속에 있는 타인에게 투사한다. 당신은 '잘못된 사람들을 자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사람들을  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이런 일이 되풀이해서 해마다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진실을 말하면,  들은 그런 어두운 면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런 측면을 기꺼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발견할  그것은 반대되는 것이 공존하는 우주의 역설을 받아들일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자신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은 당신의 영적인 자아를 발전시키는  하나의 단계다.

세상에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빛과 어둠의 잠재력 모두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부정적인 성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 그들이 당신을 판단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판단은 좋거나 나쁜 성격, 옳거나 그른 성격이 오직 자기 밖에만 다고 생각할  생겨난다.

자신에게 있는 빛과 어둠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관계를 함께 치유할 수 있다.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시작해보자.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예를 들어, 아돌프 하틀라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

내가 어떻게 히틀러와 닮았다고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히틀러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라. 당신은 단지 어떤 명칭이나 피부색, 억양 또는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어떤 집단에 대해 편견을 가진 적이 없는가?

당신이 자신의 삶에서 그런 예를 생각해낼  있다면, 당신과 아돌프 히틀러 사이의 유사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차원에 존재한다. 세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

우리가 자신의 다른 측면을 받아들일 , 자신  보편적인 의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개인적인 자각을 확장한다


-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 中 -


영성 철학자 디팩 초프라의 책의 일부를 발췌해온 글이다.


내게 다가 온 화두 중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가, 끌리는가?'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반대로, 나는 누구를 싫어하는가? 어떤 사람들을 밀어내고 만나지 않으려 하는가?라는 물음 자연스레 뒤 따라왔다.

어쩐지, 내가 사람을 가려 사귀는 것은 아닌지... 내가 취우 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물음이 올라온 것이다.

균형과 조화를 중요시 여기는 나에게는 치우친 관계는 결국 스스로를 붕괴시킨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감언이설처럼 그 잠깐 달콤하지만, 그 이후 어떤 쓴 맛이 날 기다릴진 모르니!


이 글이 마치 동시성처럼 내게 읽혔다. 최근에 새로운 관계가 많이 형성하며 내게 좋음만 너무 취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글을 읽고 명료해졌다, 내가 만났던 이들 중 저항감이 생겼던 것은 내가 안에서 썩 만나고 싶지 않던 이미지였었다, 모두!

반갑지 않았고, 되도록이면 만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한때 너무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 가능하면 그런 모습이 비친 이들과 함께하지 않고 싶었던 게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자세는 그 이미지를 품은 이들과 함께하거나 함께하지 않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치 않는 이미지조차 내 안에 일부로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일인 것이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당연히 함께할 수밖에 없듯이, 내가 사랑을 느낀다면 어두움이나 두려움은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가 비로소 이제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몸에 존재하는 이상 내게 상대계 원칙은 늘 적용된다.

다만, 사랑과 어둠이 있더라면 사랑을 기꺼이 선택할 줄 알았기에 어두움의 존재가 비교적 적어졌던 것이지 사라질 순 없던 게다.


이렇게 관계라는 망 안에서 나의 마음을 오롯이 비춰준다.


헤르메스 트리스 메기스토스와 베단타 철학에서 발견되는 연금술 중 두 번째 지혜이다.

부분 속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원자가 우주를 반영하 듯 인간의 몸은 우주의 몸을 반영하고, 인간의 마음은 우주의 마음을 반영한다.

당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든 거기에 모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베단타 철학에서 이 지혜를 '여기 있는 것은 모든 곳에 있으며, 여기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로 표현된다.

있는 그대로, 내게 '열정'이 없더라면 당신에게도 '열정'이 당연히 없을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 모두 있고, 당신에게 있는 모든 것 또한 내게 모두 있다.

우주를 창조한 그의 모든 것 또한 내게도, 당신에게도 존재한다.

모든 것은 자기 아닌 것을 모두 품고 있다.


관계 망은 삶에서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를 표현해주는 지표이기도 하고, 나를 만들어내는 것

결국 '나'란 존재 주변 환경이란 과정을 걸친 결과물이라는 말도 된다.

나는 어떤 '관계'를 선택할 것인가?


"자신의 의식 상태를 알고 싶다면, 단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고 말이다.

집단의 의식 상태를 알고 싶다면, 단지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둘러보라고도 말이다."

- 영적 스승들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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