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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Aug 30. 2017

내 영혼을 가진 리더가 되는 법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칼리 피오리나


2016년을 돌이켜봤을 때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분명 '미국 대선'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의원의 돌풍에 이어 결국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날 선 공방, 끊임없이 밝혀지는 추문들...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이었을 미국 대선이 막을 내리고 2017년을 살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그 때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고, 호평보다는 악평이 많았으며, 공화당 예비 경선 투표에서 4%대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경선 레이스를 중단한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대선 후보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님에도 IT 업체 그것도 미국 20대 기업인 HP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영향력 있는 기업인인 동시에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녔던, 칼리 피오리나였다.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대선 후보였던 칼리 피오리나 (사진출처: https://goo.gl/ofQc23)


"HP 최고경영자 출신의 피오리나는 공화당이 대선 후보의 중요한 자질로 여기는 공직 경험이 전혀 없다. 다른 후보에게 없는 민간 부문 경험은 장점이지만 폭발력이 거의 없다." (주간경향, 2015.06.09, 링크)


한때 칼리 피오리나는 전설에 가까웠다. 스탠퍼드대학 졸업 후 작은 부동산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다, AT&T와 루슨트테크놀로지에서 세일즈, 전략 분야에서 활약해 임원으로 승진했고, 1938년 창사 이래 HP가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한 CEO로 임명되며 2005년에 퇴진때까지 미국 IT 거물, HP를 이끈 여성 리더십의 아이콘이었다.


목요일 아침 일곱시의 북클럽에서 함께 읽을 두번째 책은 칼리 피오리나가 HP 이사회에서 해고된 직후 자신의 커리어 여정을 회고한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이었다. 그는 때로는 느낌표로 가득한 모티베이션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바닥의 물음표가 적힌 질문과 고민을 던져준 인물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으나, 우리는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고민하고, 저항하며, 우리가 늘 갈증에 시달리던 몇가지 질문들에 대해 함께 답을 찾았다.



# 리더의 능력과 영향력은 같거나 비례하는걸까?


칼리 피오리나는 자신이 리더가 되기로 결심한 후, 누구보다 치열하게 위대한 리더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인물 중 하나다. 그가 처음 중간관리자로서 AT&T에서 꽤 큰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일에서는 베테랑이지만 자기 자리(관리자)를 칼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팀원, 자존감이 낮고 늘 걱정이 많은 팀원 등을 계속해서 동기부여하며 일을 추진하면서 (최소 이 책에서 만큼은) 리더십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근하게 됐다. 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팀원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모든 의사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는 리더이자, 엔지니어가 아니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오해와 추측과 비판과도 맞서싸워야했던 그이기에 자기 중심을 잡고 단단해져야 하는 개인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 팀과 함께 회사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이루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스스로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작정이었다. 과소평가당하는 데 머무르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팀을 한데 모으고, 그들이 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던 사실을 환기시켰다. 그들 각자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점들도 되풀이해 말해 주었다. 그들에게 이 팀을 AT&T에서 쟁쟁한 팀으로 만들 것이라고 선포했다. 정확히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지만, 함께 해나가자고 말했다. 나는 우리 팀이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칼리 피오리나


책 제목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절반쯤 읽었을 때 왜 책 제목이 '힘든 선택들(Tough Choices)'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는 만들어지는 상황이든 아니든 본인이 관여된 모든 일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늘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서문의 제목이었던 '내 영혼은 나의 것이다'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다시 읽혀졌고요.


도전적이며 진취적으로 자신 그리고 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돌진하는 리더. 우리는 그의 커리어 전반에 있어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위기를 타개하는 돌파력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르며 칭찬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한 가지 물음이 생겼다. 리더의 능력과 영향력은 과연 같거나 비례하는 것일까?


저는 칼리 피오리나가 자신의 삶, 커리어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탄탄한 규율이 있었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에는 소극적이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요. 단순히 일을 잘 해내는 것과 함께 하는 사람의 삶이 무엇이고 어떻든 궁극적으로는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도록 영향력을 미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성의 일, 새로고침>을 보면 동아일보에서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리더였던 김희경 본부장의 이야기가 나와요. 남기자가 대부분인 신문사에서는 소수자인 여기자이자 선배로서 본인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오히려 여성성을 부정해야하는 상황이었다면, 대다수가 여성인 조직에 와서는 눈에 보이는 차이는 없지만 구성원들이 수직적이고 직설적인 문화를 힘들어 한다든지 내면에 체화한 가치가 다르더라는 말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조직의 구성, 성격, 조건과 같이 상황에 따라 발휘해야 하는 리더십 역량이 다르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런게 영향력인 것 같아요, 현재 서있는 곳의 풍경과 바람과 냄새에 맞게 내가 맞추는 것.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리더로서 늘 무언가를 하려고(Doing) 했지, 그 자체로 존재하려고(Being)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 역시 능력과 영향력은 다른 문제라고 봐요,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가까운 가족, 동료, 친구들같이 주변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손자병법에 나온 한 문장이 이 책에서 딱 두 번 언급되는데, "훌륭한 리더는 부하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나쁜 리더는 부하들이 경멸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리더는 부하들이 '우리가 해냈다'고 말하게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도 결국은 우리 팀이 모두가 동의한 선을 향해서 함께 노력하고 성취하게 만드는, 그러나 그것이 특정한 누군가의 노력과 기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낸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그런 영향력있는 존재가 스스로 되기 위해 배움과 실천을 쌓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HP의 CEO였던 시절의 칼리 피오리나 (사진출처: https://goo.gl/TULkSk)



# 여성 리더십이라는게 따로 있는걸까?


칼리 피오리나는 '여성 리더'라는 굴레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늘 그를 '유리천장을 깬 비엔지니어 출신 IT 여성 CEO',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부르길 좋아했다.


MBA 학위를 받은 후 그가 AT&T에 중간관리자로 입사했을 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사, 동료, 부하 모두에게 의심의 눈초리는 물론 험담이나 공공연한 공격을 받았다. 그때 그의 상사 중 한 명은 "칼리, 사람들은 나를 보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지. 아니면 지금의 그 자리에 못 올랐을 거라고 말이야. 사람들은 자네를 보면 그렇게 짐작하지 않아. 자네가 그들을 납득시켜야 한다고."라고 말한다. 이 말을 많은 경우에 맞춰 해석하면 대다수가 남성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여성 리더는 늘 훨씬 더 큰 성과를 내고 절대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성격적인 부분에서도 '여성스럽게' 따뜻하고 공감하는 즉,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함을 뜻한다. 여성이 직업을 갖고 동일한 조건에서 능력을 발휘해온게 이미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성은 여전히 이중잣대로 평가되곤 한다.


"난 그때까지 사랑을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지만, 특히 여성들은 상대에게 유쾌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한다. 그날 나는 가끔은 사랑받는 것보다 존중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칼리 피오리나


우리는 이 문장에 크게 공감했는데 애정 또는 인정과 존중을 혼동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필자의 선배 중에 한 분이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사랑받지만 일에서는 무시당할래요? 아님, 나쁜X이라고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일에 있어서 만큼은 존중받을래요? 나는 후자를 선택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는 나는 일하지 않아요."


이 말을 듣고 순간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그때까지 나는 줄곧 인정과 존중을 혼동했었기 때문이다. 일 잘하고 헌신적이고 책임감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존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칼리 피오리나는 자신이 존중받기 위해서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부각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온 사람이었다. 그는 늘 차려입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슨 브랜드의 어떤 옷을 입었는지 소비되길 극도로 싫어해 HP의 CEO를 하는 내내 대부분의 독자가 여성인 잡지의 인터뷰는 거절했다. 유리천장이나 여성리더십에 대한 인터뷰도 일절 하지 않았고, 심지어 중요한 계약 건으로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파트너가 그를 기생집에 데려갔는데 그 경험담을 매우 유니크하고 새로운 배움이었던 것으로 표현했을 정도로(책에 무척 자세히 나와있다) 어떤 면에서든 여성이라서 다르게 대우받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는 또 이 부분에서 고민이 생겼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리에 있을 때 더 많은 여성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 리더'로 존재하는 것이 좋을지, 한 개인으로 오롯이 존중받기 위해 '여성'이라는 태그를 늘 제거하는 것이 좋을지, 무엇이 더 나은 방법인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오갔다.


여성 리더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대기업에서 일할 때 똑같은 직급이라도 유독 여성 매니저는 일은 물론이고 패션 스타일, 남편과 가족에 대한 부분, 퇴근 후 여가생활 같은 것도 모두 평가의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더라고요. 여전히 수가 적으니까 주목을 받고 대표성을 띄는 것 같아요. 일을 잘해도 문제, 못해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죠. 프로페셔널들이 모인 회사에서도요.

여성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거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라고 표현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여성이라는 존재에게 어떤 언행이나 문제가 되는 일들이 얼마나 민감하고 위협이 되는 것인지 공통적인 의견으로 밝히자는 거죠. 남성과 여성은 하나의 다른 속성으로 분류될 수 밖에 없으므로 집단적 의미에서 다름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리더라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고요.

저는 사실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데 성별에 관계없이 훌륭한 리더인데 알고보니 여성인 경우가 세상의 절반이 되었으면 좋겠으면서도,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서 많은 주니어들에게 영감을 주는 리더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칼리 피오리나같이 능력과 강한 리더십 그 자체를 드러내는 리더도 있어야 하고, 셰릴 샌드버그처럼 프로페셔널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리더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그저, 지금보다는 훨씬 수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 뿐이다. 2013년 GMIRatings에서 국가별 여성임원 비율을 조사했는데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여성임원이 전체의 27~36%인 것에 비해 미국은 11.7%, 중국은 8.4%였다. 그리고 한국은 1.9%였다(다행히 일본이 1.1%로 조사한 국가 중에서는 가장 낮았는데 이게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의견이든 목소리가 더 많아지고 커져야 한다는 것, 그래야 사회 안에서 더 많이, 더 자주 토론될 수 있고 더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다.




두시간여의 북클럽 중 우리는 이밖에도 정말 많은 화두에 대해 쉴새없이 토론했는데 기억에 오래 남는 화두 중 하나는 '평정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에게 맞지 않는 제안을 받았지만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거절하지 못한 것, 내가 애정하고 헌신했던 조직 또는 관계와 단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내가 아니라 남의 시선으로 나의 가치를 판단하다 자존감이 무너져버린 것. 이 모든 것은 내 안의 중정, 평정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내 안의 고요한 평정심을 되찾고, 몸이 아닌 마음을 위한 쌀을 차곡차곡 모으려면 뭘 해야 할까?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요가나 명상을 하고, 누군가는 산에 오를테다. 각자에게 맡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꾸준히 해나갔으면 좋겠다. 행여 그게 틀렸더라도, 지금 내가 답이라고 했던게 나중에 보니 아니더라도, 멈추지말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기회로 삼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풀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에 목요일 아침 일곱시의 북클럽이 함께 했으면 더 좋겠다.


"그래요, 우리는 실수를 할 것입니다. 나도 실수를 할 거고 여러분도 실수하겠지요. 우리가 실수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가 없습니다. 목표는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목표란 고정입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서는, 시의적절하게 불완전한 결정을 내려서 시행하는 것이 너무 늦게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실수는 저지르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실수에서 배워서 가은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하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실수를 하면, 일어나서 먼지를 툭툭 털고 교훈을 얻어 전진할 겁니다. 바로 그게 승자가 취하는 방법입니다."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칼리 피오리나


그 누구보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는, 목요일 아침 일곱시의 북클럽


WEConnect는 프로페셔널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과 역량강화를 돕는 소셜벤처입니다.

본 북클럽은 사회혁신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사유와 토론을 통한 성장,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회의 확대를 돕는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2017년 파일럿을 거쳐 2018년에는 정식 런칭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이메일 부탁 드립니다:)  jin@weconnec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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