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서관에 갈 가방을 싸 놓고 우유에 시리얼을 말다가 갑자기 몇 개월 전 아들 친구 엄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듣기로는) 그 집의 가장이시라죠?"
번역이 좀 어색한데, 실제로 그녀가 한 말은 "So, (I heard) you are the breadwinner of the family?' 쯤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를 따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국제학교를 다녔다. 국제학교는 나라를 옮겨가면서 일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일관성 있는 교육 커리큘럼 (예를 들어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을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옵션이다. 그래서 공교육이 완전 무료인 이곳 네덜란드에서도 별 도리없이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냈다. 비싼 학비는 회사의 지원으로 버텼다.
싱가포르에서 우리 애들이 다니던 캐나다 국제학교 (CIS) 학생들은 대다수가 주재원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중국에서 온 일부 슈퍼리치 패밀리를 제외하면 다 고만고만한 직장인들이었다. 우리 집과 차이가 있다면 대부분 아버지를 따라서 온 케이스라는 점 정도였다.
여기 네덜란드 국제학교는 좀 다른데, 일단 대다수 아버지가 네덜란드(더치)나 독일인 등 유럽인이다. 그리고 좀 되게 부자다. 자국의 무료 공교육을 놔두고 굳이 아이들을 비싼 국제학교에 보내는 그들은 규모가 있는 사업가이거나, 네덜란드에 본사 또는 유럽 본부를 둔 글로벌 기업의 최고 경영자 거나. (자기 집 뒷마당에서 전교생 졸업 파티를 열어주는 클래스)
하여간에 우리 둘째 아들 녀석이 하필이면 유럽 각지에서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되게 부잣집 아들내미와 수년째 절친이다. 날씨가 좋으면 함께 그 집 아버지가 태워주는 요트를 타고, 주말이면 그 집 아들내미랑 함께 조정 (rowing) 연습을 가고, 때때로 암스테르담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좋다는 - 나는 못 가본) 그 집에 가서 다른 친구들과 놀다가 자고 온다.
그 집 아빠는 네덜란드인이고, 엄마는 홍콩 출신의 지아 (Xia, 가명)이다. 지아는 우아하고 화려한 자태의 전업맘으로, 지아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아주 친밀하게 다가왔다.
지아: "정말 만나서 반가워요! 여기서 보기 드문 아시안 친구가 생기다니 정말 좋아요. 다음 주에 다른 엄마들이랑 우리 요트에서 파티할 건데 오세요!"
나: "와, 정말 좋겠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저는 회사를 다니거든요. 재미있게 노세요!"
지아: "이번에 학교 엄마들 모임에서 자선 바자를 해요. 행사 끝나면 우리 집에서 파티할 거예요. 올래요?"
나: "어, 아니요. 고맙지만 저는 그때 출장을 가요."
...
이러기를 수 차례, 당연히 더 이상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고, 아이들 학교 행사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치고 마는 사이가 되었다.
나야 뭐 아이들 키워내는 거의 20년 동안 늘 그렇게 외로이 지냈으니 새로울 것도 없었다. 열 번 초대에 아홉 번을 거절하는 프로불참러인 나랑 놀아주는 학교 엄마들은 (그런 분들이 드물게 존재하므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마음에 천사 내지는 보살을 품고 사는 게 분명한데, 네덜란드 학부모 생활 9년 동안 딱 2명 만났다. 그나마도 점점 멀어지는 중.
그날도 아들은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놀다가 집에 돌아올 참이었고, 마침 회사일로 근처에 있던 내가 차로 데리러 가기로 했다. 암스테르담 복판에서 놀다 오는 사내 녀석들보다 내가 조금 일찍 도착해서 집 앞에 차를 대고 있자니, 녀석들 대신 지아가 먼저 나타났다. 어딘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지아: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제이 태우러 온 거예요?"
나: "네, 반가워요. 애들이 아직 오는 중이래요. 내가 좀 빨리 왔네요."
지아: "뭐 하고 지내세요? 여전히 바쁘세요?"
나: "네, 출장이 많아졌어요. 아 참, 얼마 전까지 일 때문에 홍콩에 있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시간을 때워야 하는 친하지 않은 두 여인이 홍콩, 홍콩 음식, 홍콩 날씨, 홍콩 음식을 파는 네덜란드에 있는 식당 등등을 돌려가며 애써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에 문득 지아가 그랬다.
지아: "그런데 (듣기로는) 그 집의 가장이시라죠?"
그 말에 뭐라고 대꾸를 했겠지만, 잘 기억은 안 난다. 얼마 되지 않아서 내 아들과 그 집 아들내미가 추위에 코가 빨개져서 나타나는 바람에 서둘러 바이바이 하고 돌아왔다.
3주 동안의 연말 휴가가 이번 주로 끝난다. 다음 주 출근이 너무 괴롭지 않도록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에 갈 짐을 싸고, 빈속을채우려 우유에 시리얼을 말다가 갑자기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지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아무 말 대잔치였을까. 아니면 나를 가엽게 여긴 건가.
뭐래...
신경 끄기의 기술이 절실하다.
(대문 사진은 제가 애정하는 도서관 de Bibliotheek Eemland의 오늘 풍경입니다.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