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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Mar 11. 2024

난 또 우리 아들이 탁구 영재인 줄 알고



“ㅇㅇ어머님, 잠깐 면담 좀 하시게요.”     



아이 탁구 레슨 마치자마자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대충 서서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밖으로 나오란다. 신발까지 갈아 신고 탁구장 앞 성당으로 나섰다. 탁구장 안에서 레슨 시간이나 아이에 관해 간단하게 이야기는 해 왔지만, 밖으로 부른 적은 없었다. 학교 선생님이면 아이의 생활 태도나 어떤 이유로 면담이 들어오면 잔뜩 긴장했겠지만, 탁구 선생님께 탁구 말고 할 이야기가 뭐가 있나. 2층 탁구장에서 계단을 내려와 성당 입구 벤치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가슴이 콩닥거렸다.     



‘왜 굳이 밖으로 나오라고 할까? 혹시....우리 아들 선수 시키라고? 연습도 잘 안 하는 애인데 재능이 보이나? 선수까지 생각하고 탁구를 시킨 건 아니었는데. 벌써 진로를 찾았다니 나 이제 아이 매니저 해야 하는거야? 그건 좀 싫은데. 나는 내 일도 소중한데. 아.... 어떡해야 하지?’  


   

“애 그만 좀 잡아. 착한 애를 왜 기를 죽여? ㅇㅇ가 뭘 했다고 울리냐고. 어르신들이 다 한소리씩 하네.”     



“...”    


  

입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지만, 탁구 영재인 줄 알고 혼자 설레발 친게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다. 정말 집중해서 운동하는 것은 10분이나 될까? 로봇에서도 설렁설렁 치다 대충 시간 되면 집에 가려고 하는 모양새가 거슬렸다. 개학해서 친구들과 놀고 오면 더 집중을 못했다. 할 거는 하고 재밌게 놀라고 좋게 타일렀더니 입이 댓발로 튀어나와 구석으로 가서 어둠의 자식이 되었다. 애가 꽁 해가지고 있으니 실버 어르신들이 걱정을 하셨다. 나도 지켜보다 복장이 터져서 한마디 했다. 금세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풀이 죽었다. 선생님이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는 고대로 이야기 했단다.     



“엄마가 기분 나쁜 티 내지 마라고 했어요.”     



“...”     



아... 정말 전생에 너와 나는 웬수였을 것이다. 저렇게 또 나를 나쁜 엄마 만드네... 실버 어르신들....6~70대로 다들 부모님 뻘이다. 내가 아이를 혼내고 나면 어르신들에게서 시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진짜 며느리는 아니기에 할 말을 참는 느낌이지만 눈에서 느껴지는 언어는 내 편은 아니었다.      



“그래! 나 애 잡았다. 착하고 순한 애 내가 잡았다, 그래!”      


                  




심리상담 체험단이 들어왔다. 체험단 같은 건 안 하는 편이다. 즉각 돈으로 받는 것을 좋아한다. 단순히 내 심리상담이면 굳이 시간 들여 타지역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동심리상담도 하고 있었다. 어디 맛집이나 피부샵, 제품 체험단 몇 군데 해보긴 했지만 딱히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체험하러 오가는 시간이 든다. 어느 정도만 지원해 주고 돈을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치냉장고나 노트북처럼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은 내 차례가 오지도 않았다. 소소하게 몇 만원짜리 얻어 먹고 또 원고를 써야 하는 게 영 수지타산에 맞지 않아 안 했는데, 아이 심리 상담은 해보고 싶었다. 물론 20만원이 넘는 검사비가 무료라 진행한 것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나와 자주 부딪치는데다 반에서는 친구의 학폭위가 몇 번 열렸다. 학교폭력이 아이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서 열린 학폭위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학폭위 열린 친구는 끈으로로 목을 조르고 팔을 꺾는 등의 위험한 행동을 우리 아이에게도 해왔다. 나는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걱정이 되기는 했다.     



부모양육태도 검사부터 아이 심리검사까지 체험단이지만 밀도있게 진행했다. 가족모두가 상담을 받으러 한 시간 거리 타지역까지 다녀왔다. 검사 결과를 약간은 예상했었다. 나는 통제하는 엄마고 남편은 허용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참는 아빠라고 했다. 꽤 오래 상담을 했는데 기질, 성향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딱 하나만 기억에 남았다.      



“엄마는 통제지향적인 엄마네요. 아시다시피 아이는 눈치를 슬슬봐가며 엄마 말은 장난으로라도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있고요. 아이는 지금 엄마를 싫어하는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이대로면 사춘기 되면 정말 힘들어질거예요. 둘째가 많이 어리던데요. 아마 둘째도 형 따라 똑같이 할 겁니다.”      



가슴에서 징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묵직한 걸로 계속 치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새끼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은 충격이고 슬픔이었다. 나름 잘 키워 보려고 엄하게 한 부분들이 아이에게는 그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잔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나 역시 엄마의 그런 모습들이 싫었다. 엄마 없이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어도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보다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많다. 나도 엄마의 통제와 잔소리가 숨이 막힐 정도로 싫었으면서, 그렇게 싫어했던 걸 자식에게 하고 있다.     



탁구를 함께 배워보기로 했다. 함께 공을 주고 받고 운동을 하다 보면 더 친밀해지지 않을까?     



같이 탁구를 배우기 시작한 지 7개월이 되었다. 이번 상황은 아이를 잡았다는 표현은 좀 억울하다. 아이가 너무 연습을 안해서 딱 한마디 한 것 가지고...모두 어르신들이니 귀엽고 착한 아이만 이뻐한 거다.     



다음날 선생님께 아이 선수로 키우자고 부른 줄 알고 엄청 설렜었다고 이야기했다. 선생은 그냥 취미로만 치라는 조언을 하셨다. 아이에게 정말 재능이 보이는 건 아닌가 보다.      



아들아, 이왕 탁구를 시작한 거 엄마는 끝까지 너랑 배울거다. 지금은 귀찮고 하기 싫겠지만 너 군대가서 보자. 탁구 잘 치고, 공 잘 차면 군대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는지 말이다. 그때 ‘탁구 기어이 치게 해준 엄마에게 큰절 올린다’에 붕어빵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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