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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Nov 22. 2023

40대 백수는 왜 데이터 라벨러가 되었나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되길 원했던 길이 여기 있었다.



데이터 라벨러가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라벨링 교육을 듣던 지인이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같은 교육을 추천했고 정말로 나와 잘 맞았다.

어쩌다보니 일도 빨리 시작하게 되어 교육을 소개해 준 지인에게 역으로 일자리를 소개해 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2년 째 수입이 없는 백수였다.


갈 곳도 없었고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지원된 이력서의 절반도 열람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열람 전 확인 할 수 있는 항목은 사진과 이름 그리고 나이 정도였다.


물론 눈을 낮추면 더 많은 곳에 지원 할 수 있었을 것이고 2년이나 백수로 지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더이상 떠지지 않는 눈꺼플을 억지로 밀어올리고 오후에 하고 싶은 샤워를 아침에 하며 들어가지 않는 아침밥을 우겨넣으면서 향한 목적지가 회사가 되기 싫었다.


이왕이면 주5일 40시간 근무 연차 있고 가끔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야근에 수당이 나오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하지 않고 이왕이며 사적인 인간관계보다는 공적으로 일에만 집중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수도권이었다면 소기업이라도 이런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곳은 도시라는 호칭이 무색할만큼 일자리가 없는 도시였다.





데이터 라벨러로서의 나는 원하던 그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에 잠이 깨면 억지로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며 개운하게 일어난다.


좀 찌뿌둥하면 스트레칭을 하거나 가볍게 실내자전거를 탄다. 왠지 기운이 넘치는 날은 벌떡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씻고 싶은 생각이 들면 샤워를 한다.


아침밥은 먹고 싶은 걸 먹는다. 가볍게 먹었다가 허기가 빨리 찾아오면 간식 대신 이른 점심을 든든하게 먹는다.



오후에 한시간 정도 일하고 산책을 하거나 실내자전거를 타며 몸을 움직여 준다.

땀이 나도 괜찮다. 바로 씻으면 되니까...




일 하는 시간은 9시부터 6시로 고정하려고 하지만 쉬고 싶을 때 쉬기 때문에 저녁 10시까지 일하는 때가 많다.


2시간 일하고 책을 30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본다. 퇴근 후 몰아서 하는 게 하는 게 지루하지 않게 적절하게 분배한다.


쉬는만큼 무급이지만 일한만큼 돈이 벌린다.

업체의 상황에 따라 휘둘리지만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업체와의 소통은 오로지 메신저로만 통한다. 한창 일하는 중에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거나 갑작스럽게 예상 밖의 업무를 주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메신서 방 안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창을 닫으면 그만이다.


프로젝트가 짧다는 건, 메신저에서만 존재하는 저 싫은 사람을 며칠 뒤에는 안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되었다






사람에게 치이지 않는다는 것,

시간 활용 자유도가 높다는 것,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이 잘 될 때는 열심히 하면 되고 잘 안 될 때는 평일 대낮 시간을 취미생활에 써도 된다는 것,

씻고 싶을 때 씻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도 된다는 것...


내가 원하던 생활은 이것이었다.

적게 벌어도 좋으니까 이렇게 살고 싶었다.



결국 나는 데이터 라벨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고용해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데이터 라벨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데이터 라벨러라는 직업의 특징이 나에게 너무나 잘 맞았기에 될 수 밖에 없었다.






우연히 이 길로 들어섰고 정말 운 좋게 일을 시작해 끊기지 않고 일을 계속 해오고 있다.

같은 수업을 들은 동기들이나 커뮤니티에서 일자리 없다는 말이 나올 때에도 나는 항상 둘 이상의 프로젝트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주변에 설파하기 시작했다.


물론 가르쳐 준다고 해서 다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사정에 의해 혹은 개인 성향에 의해 라벨러의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예상보다 시간 자유도가 낮고 돈이 안된다는 이유들이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자 했다.

백명의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노하우이지만 백한번째 사람에게는 간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라벨러가 된지는 고작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데이터 라벨러가 되어보니 어떻더라 라고 말하기에는 많이 이르다. 2년은 겪어봐야 이 업계가 어떻더라, 오래 버티기 위한 노하우, 일 잘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다.


바로 어떻게 일을 빨리 시작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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