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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퇴근, 그리고 독일행 비행기표

어쩌다가 마케터 (1)

by 로하
제가 얼마나 힘들었냐면, 새벽에 퇴근하면서 그냥 이대로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러면 쉴 수라도 있잖아요.


얼마 전,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하다 그만두었다는 지인이 덧붙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퇴근이 일상이던 날들

5년 전, 나는 국제회의를 기획하는 대행사의 팀장이었다. 그때도 새벽 퇴근은 일상적이었고, 현장에서는 1시간이라도 눈을 붙일 시간이 감사할 정도였다. 처음에 그 일을 배울 때에는 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성취감이 컸고, 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내 모습이 멋있었다. 여러 팀과 파트너사 사이에서 일정을 조율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정신이 지쳐갔다.


10년 뒤 나의 모습은?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이렇게 심장을 졸이며 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에 계시던 나보다 열 살 많은 이사님은 내가 그리는 10년 후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회사 밖에서,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떨까?

대행사에서 다룬 여러 업무 중 하나만 골라도 다른 직업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 일을 해외에서 한다면 어떨까? 몇 번 해외 PCO와 일하면서, 한국처럼 과중한 업무에 치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래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독일로 향한 결심

그렇게 독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오빠가 독일에 살고 있어 정착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또한, 독일은 전시박람회 선진국이기 때문에 비슷한 일을 해온 내가 쉽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경력도 있고 영어도 잘 하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 조차도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컸고, 부정적으로 보면 준비 없이 무모하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 도전을 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이 되는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독일 땅에 가게 했다.


베를린에서 시작된 새로운 일상

독일 베를린에서의 첫 1년은 순조로웠다. 독일어를 배우고, 몇 개월 만에 초급 자격증을 따며 독일인 친구들도 사귀었다. 매일 도시를 경험하며 독일을 즐겼다. 베를린은 도시의 70% 이상이 숲인 도시라 여름이 특히 좋았다. 아니 봄부터 좋았다. 도시 한가운데에도 큰 나무가 많다보니 집 안에 있어도 창문 밖 나무 틈으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고, 햇살이 좋은 날에 사람들은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었다. 이렇게 푸르르고 평화로운 곳에서 일하며 살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유학준비비자로 2년을 받았기에, 첫 1년은 독일어를 배우고, 나머지 1년은 취업을 하려 했다. 1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멈춰버린 계획들

독일어 초급 자격으로라도 이력서를 내볼까 고민하던 차에 아시아에서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설마 저 바이러스가 이렇게 큰 문제가 될까?” 했지만, 곧 독일에 상륙했고, 몇 주 뒤 도시가 락다운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연락은 없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한국 기업들에 이력서를 냈다.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연락이 왔지만, 비자 문제로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귀하의 이력서를 잘 받았지만, 아쉽게도 다른 후보자에게 기회를 주게 되었습니다."라는 답변만 쌓였다.


그 정도에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력서를 계속 수정하고, 독일에서 사용하는 이력서 검토 시스템을 분석했다. 홍콩 유명 대학의 취업 지원팀의 블로거에게 이력서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독일에 살고 있는 마케터에게도 정착 조언 컨설팅을 받았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무직 상태인 내가 직장을 얻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내 이력서를 멋지게 다듬을 동안 코로나 상황은 악화되고 내가 기존에 하던 일은 대면 행사이기에 실직이나 무급휴직이 되어 갔고, 내 경력은 고국을 떠나 아무도 찾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 락다운’ 속에서도 길을 찾아 나선 제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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