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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Apr 11. 2023

너 커서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봄비와 함께 찾아온 달팽이


최근 지인과의 대화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은 같은 회사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고, 거기에서 이미 알던 직원의 졸업 대학교를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재밌는 부분은 지인이 그 직원의 학벌을 알게 되자 그 후로부터는 직원이 달라 보였다는 점이다. 궁금했다. 어떻게 달라 보였는지. 그래서 구체적으로 학벌이 좋은 걸 알자 어떻게 달라 보였냐고 묻자, 그 직원이 중, 고등학교 때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노력은 한 친구구나라는 인정을 하게 됐다고 했다.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지만, 곧바로 그러한 결론을 내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은 의구심이 들었다. 한 개인을 수능이라는 시험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혹은 없다고 해서 중, 고등학교 때 노력을 안 하고 허투루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건 상대방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간 동안 다른 가치 있는 일을 더 많이 하거나, 사회의 다른 분야에 더 기여를 했을 수도 있다. 혹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을 수도 있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

또한, 수능 시험의 결과가 개인의 노력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있지 않음은 보여주는 연구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개최한 ‘국민 행복과 삶의 질 향상’ 정책 세미나에서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득 10분위 학생들의 SKY(서울,고려,연세)대 입학 가능성이 1분위 학생들보다 4.8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구사 능력은 5.5배 차이가 났다. 소득 분위는 전체 가구의 소득을 10단계로 나눈 지표로, 10분위로 갈수록 소득이 높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양 상태와 올바른 판단 능력에 대한 연구 결과도 흥미로웠다. 불균형 영양상태나 필요 영양소의 결핍은 브레인 포그 brain fog를 야기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이다. 즉, 본인의 의지나 노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이 지속돼 집중력이 감소하고, 기억력 저하, 피로감 등이 동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혹시라도 학창 시절 이틀 연속 밤을 새워서 시험공부를 하거나, 혹은 밤새 클럽에서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첫차를 타본 이들이라면 대충은 어떠한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 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학창 시절 본인이 직접 돈을 벌어야 해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꽂혀 매일을 몰두하면서 국영수과의 공부는 뒷전이 됐을 수도 있다.

개인의 모든 역사를 관심 있게 알아보고자 하기도 전에,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한 진심을 졸업 학교만으로 미리 평가를 내리는 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얻게 될 위험성이 있을뿐더러,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이 결여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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