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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수 Feb 19.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백담만설, 그리고 한라산

  어제 오늘은 날이 무척 맑았다. 이런 날이면 제1 전망대에서 한라산이 뚜렷이 보인다. 전에 내린 눈이 백록담에 하얗게 쌓였다. 이렇게 한라산이 뚜렷하게 보이는 날은 1년에 한 70일 밖엔 안 된다.     

거문오름 제1전망대 본 녹담만설(촬영: 이성만, 2020.2.13)

                 

  산 아래 해변에는 이미 배춧꽃, 유채꽃을 비롯한 봄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데 한라산 봉우리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이 풍경은 ‘녹담만설(鹿潭晩雪)’이라고 부른다. 처음에 나는 晩이 아니고 滿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滿으로 쓰면 ‘백록담에 가득 쌓인 눈’이 되고, 晩으로 쓰면 ‘백록담에 늦게까지 쌓인 눈’이 된다. 아마 옛 사람들은 滿보다 晩이 더 좋은 구경거리였나 보다. 어떤 해에는 이 눈이 양력 4월까지 보일 때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기후온난화로 인하여 아마 그때까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이 녹담만설은 영주 10경 중의 하나가 된다.      

   

삼다수 숲길에서 본 녹담만설(촬영: 정희준, 2020.2.13)

                             

  제주 출신 문인인 이한우(李漢雨)[1818~1881]는 조선 순조 때 사람으로 제주시의 매촌(지금의 도련2동)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 분이 제주의 뛰어난 명승지 10개를 정한 것이 지금의 ‘영주십경(瀛州十景)‘이다. 瀛州는 ’큰 바다로 둘러싸인 고을‘이란 뜻으로 제주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외로 다른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 가보면 ’영주선재(瀛州禪齋)‘이란 부속 건물이 있는데 아마 부산 앞 바다가 크기 때문에 그렇게 건물 이름을 짓지 않았나 생각한다.    

          

부산 범어사의 영주선재

                                                           

매계 이한우가 정한 영주10경은 아래와 같다.     

1경 성산일출(城山日出): 성산의 해돋이                                 <아침 풍경>

2경 사봉낙조(紗峯落照): 사라봉의 저녁 노을                            <저녁 풍경>

3경 영구춘화(瀛邱春花): 영구(속칭 들렁귀, 오라리 방선문)의 참꽃        <봄 풍경>

4경 정방하폭(正房夏瀑): 정방폭포의 여름                               <여름 풍경>

5경 귤림추색(橘林秋色): 과수원의 노란 귤                              <가을 풍경>

6경 녹담만설(鹿潭晩雪): 백록담의 늦겨울 눈                            <겨울 풍경>

7경 영실기암(靈室奇巖):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양(陽)>

8경 산방굴사(山房窟寺): 산방산의 굴 절                                <음(陰)>

9경 산포조어(山浦釣魚): 산지포구의 고기잡이                           <바다 풍경>

10경 고수목마(古藪牧馬): 풀밭에 기르는 말                             <산 풍경>     

이후 이한우는 영주십경에 

11경 서진노성(西鎭老星: 서귀진에서 보는 노인성)                     

12경 용연야범(龍淵夜帆: 용연의 밤 뱃놀이)                         

을 더하여 영주십이경(瀛洲十二景)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숫자는 경승의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1경이라고 최고가 아니고 12경이라고 다른 경치보다 뒤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특정한 기준에 의하여 선정하고 나열한 것 뿐이다. 그 기준은 위 항목에 맨 뒤에 있는 것이다.     


  이날 내가 탐방객에게 물어봤다.

“제주에서 아침 해 뜨는 풍경이 최고인 곳은요?”

금새 정답이 나왔다.

“성산 일출봉!”

“그럼 저녁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고산 수월봉!”

그렇다. 사라봉보다는 고산 수월봉이 훨씬 낙조가 아름답다. 그런데도 제2경이 고산 수월봉이 아니고 왜 사라봉일까? 그거야 정하는 사람 마음이겠지. 하지만 다른 이유는 없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한우라는 분은 도련 2동 사람이니까 고산까지는 잘 몰랐던 건 아닐까? 아니면 고산엔 가더라도 먼 길이어서 저녁노을을 못 봤을 수도 있겠지'

어쨋든 이런 면에서 고산 수월봉은 좀 억울한 면도 있겠다.     

한라산의 설경(촬영: 정희준)

                                                           

  제주의 명승을 정한 이는 또 있다.

숙종 때에 제주목사로 왔던 야계(冶溪) 이익태(李益泰) 목사는 1694년 5월부터 1696년 2월까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동안 관덕정, 우연당, 향교 등을 중창했고 탐라에 관한 문헌 '지영록'을 편찬하는 등 제주 문화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이 분은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하도진성), 성산(城山), 서귀소(西歸所, 서귀진성), 백록담(白鹿潭), 영곡(靈谷,영실계곡), 천지연(天池淵), 산방(山房, 산방굴사), 명월소(明月所 명월진성), ·취병담(翠屛潭:용연)을 ‘제주십경(濟州十景)’으로 꼽았다.

이 분은 특이하게 진성을 여러 군데 포함시켰다.     


  그보다 조금 뒤에 제주목사로 왔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1702년 도임]은 

·한라채운(漢拏彩雲): 한라산의 고운 빛깔 구름

·화북재경(禾北霽景): 날씨 좋은 날 화북포구 경치

·김녕촌수(金寧村樹): 김녕리의 팽나무

·평대저연(坪垈渚烟): 평대리의 물안개

·어등만범(魚燈晩帆): 행원리의 저녁 바다 풍경(행원리의 옛 이름이 어등개)

·우도서애(牛島曙靄): 우도의 새벽 아지랑이

·조천춘랑(朝天春浪): 조천관에서 보는 봄날 파도

·세화상월(細花霜月): 세화에서 보는 달을 제주의 팔경(八景)으로 꼽았다.     

이 분은 탐라순력도를 그리게 한 분으로도 유명한데 매우 서정적인 경치로 8경을 주로 동쪽 마을을 중심으로 선정한 것이 이채롭다.          


  또 순조 철종 연간에 영평리에 살았던 소림(小林) 오태직(吳泰稷)[1807~1851]은 

·나산관해(拏山觀海): 한라산에서 바라보는 바다

·영구만춘(瀛邱晩春): 오라동 방선문에 가득 핀 참꽃

·사봉낙조(紗峯落照): 사라봉에서 보는 낙조

·용연야범(龍淵夜帆): 용연의 밤 뱃놀이

·산포어범(山浦漁帆): 산지포구에서 보는 고깃배

·성산출일(城山出日): 성산에서 보는 일출

·영실청효(靈室晴曉): 영실계곡의 청량한 새벽

·정방사폭(正房瀉瀑): 정방에서 보는 폭포 등 8곳을 선정하였다.  

    

  조선 헌종 때 제주목사로 왔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도 역시 열 곳을 선정하였는데,      

·성산출일(城山出日), 사봉낙조(紗峯落照), 영구상화(瀛邱賞花) ,정방관폭(正房觀瀑), 귤림상과(橘林霜顆), 녹담설경(鹿潭雪景), 산포조어(山浦釣魚), 산방굴사(山房窟寺), 영실기암(靈室奇巖)

·대수목마(大藪牧馬)을 제주십경으로 정했다.     


  이한우가 선정한 영주십경은 이원조 제주목사의 선정 품제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지어진 연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참고했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또 차례와 명칭에서도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현재는 영주십경하면 거의 다 이한우란 분이 정한 것을 들고 있다. 이건 많이 아쉽다. 다른 분들의 정한 것도 다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한라산의 고운 빛깔 구름’, ‘평대리의 물안개’, ‘우도의 새벽 아지랑이’, ‘조천관에서 보는 봄날 파도’, '행원리의 저녁 바다 풍경', ‘영실계곡의 청량한 새벽’.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정(詩情)인가! 이한우기 선정한 영주십경만 말하지 말고 위의 경승을 모두 말했으면 좋겠다. 그만큼 우리 제주의 명승이 풍요로워질 것이니까. 해당하는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라산의 설경(촬영: 정희준)

                                                             

  제주도에서는 외지 분들에게 해설을 하려면 한라산을 빼 놓을 수 없다. 한라산은 제주의 중심이며 제주민에게는 하나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높이가 1950m로 되어 있으나 작년에 나온 ‘제주특별자치도지’에서는 ‘1947m’로 되어 있다. 풍화에 시달려 낮아진 것인지,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해수면이 높아진 이유인지, 뭐가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백록담 설경(촬영: 정희준)


  한라산의 이름은 ‘은하수를 끌어당기는 산’이란 뜻을 가졌다. 너무 멋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많은 의문이 생긴다. 이 ‘은하수를 끌어당기는 산’이란 것은 한자로 ‘漢拏山’이라고 쓴 것을 우리 말로 풀어놓은 것이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8권에 보면 ‘漢拏者以雲漢可拏引也’라고 되어 있다. 이를 해석하면 ‘한라산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 된다. 그럼 그전 아니 더 오래 전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저 산을 무엇이라고 했을까.      


  제주도 분들은 한라산을 ‘한라산, 한나산, 할락산, 하로산’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제각각 불렀다. 그런데 학교에 가 보니 교과서에 ‘한라산’이라고 표기돼 있어 그러려니 하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漢拏山’이 왜 ‘한나산’이 아니고 ‘한라산’이라고 표기하는지 부터가 이상하다. 분명 ‘拏’는 ‘잡을 나’라고 되어 있다. 아래 낱말만 보아도 이 글자는 ‘라’가 아니라 ‘나’로 읽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漢拏山’은 ‘한라산’이 아니라 ‘한나산’이라고 읽는 게 맞다.     


작나(作拏): 소란을 일으킴

금나술(擒拏術): 꺾기기술의 무술

소달나태자(蘇達拏太子):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이었을 때의 이름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고유의 지명을 따질 때는 그것을 나타낸 한자말이 ‘음차’인지, ‘훈차’인지, 아니면 이 둘을 조합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다시 말하면 ‘漢拏山’은 산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지. 그 산이 갖고 있는 의미를 표현한 것인지 그것을 알아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다행하게도 ‘漢拏山’이 음차라는 주장이 있다. 고대 태양신 ‘할리오스’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몽고에서는 ‘구름위에 우뚝 솟은 검푸른 산’을 ‘한라’라고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최남선 씨는 이 산의 옛 이름을 ‘한울산, 하늘산’이었다고 주장을 했다. 이것으로 보면 ‘‘漢拏’는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라, 한나, 할락, 하로’의 음을 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라산의 또 다른 명칭은 釜岳(부악), 仙山(선산), 鎭山(진산), 女將軍(여장군), 單山(단산), 浮羅山(부라산), 원산(圓山), 圓嶠山(원교산), 無頭岳(무두악), 頭無山(두무산), 朝鮮富山(조선부산), 등인데 이는 모두 훈차이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백록담, 이로 인하여 여러가지 이름을 갖는다(촬영: 정희준)


  ‘하로산’이란 말을 지금도 쓰인다. ‘하로산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하로산’은 한라산을 의미하며, ‘또’는 남성 신격을 의미하는 존칭접미사이다. 이에 따라 하로산또는 한라산을 남성 신격화한 당신 명칭이다. ‘한라산님’ 또는 ‘한라산 신령님’의 의미를 지닌다.     

성산읍 수산1리에 있는 울뢰마루 하로산또 신당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호근동과 서호동 및 표선면 가시리 안좌동, 제주시 성산읍 수산리와 시흥리 및 신양리 등지에서 모셔지는 마을 본향당신이 모두 ‘하로산또’라는 이름을 지녔다.          


  ‘울뢰마루’는 수산 1리에 있는 지명이다. 그러니 ‘울뢰마루에 있는 한라산의 남성 신을 모신 당’이라는 뜻이 된다. 당에 좌정하고 있는 하로산또는 생산, 물고, 호적, 장적을 차지한 마을 토주관으로 인식된다. 당제일은 1월 2일과 13일, 2월 13일(영등제), 7월 8일, 11월 14일이다     


  이 날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탐방객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탐방객 중에는 일가족 6명도 있었다. 요즘 세상에 자녀를 넷이나 낳았으니 참 드문 일이다. 막내는 아직 어려서 아빠가 업고 왔다. 큰 아들은 엄마를 돌보느라 천천히 오는데 중간에 두 오누이가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내가 앞서서 가는데 계속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른들은 저만큼 쳐저 있고. 이 두 오누이만 숨도 헐떡거리지 않고 가볍게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초등학생들은 엉뚱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쉴새 없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간혹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있었다. 그럴 때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넘어갔다. 난 속으로 기질범답(奇質凡答, 기발한 질문에 그냥 그렇고 그런 대답)이로구나 하고 가던 중이었다. 초등학교 4-5학년 쯤 되어 보이는 누나가 질문을 했다.

“근데 이 산엔 쓰레기가 하나도 없네요”
 “버리면 큰 일 나지”

“왜요?”

“벌금 3천만원!” (이크 이건 거짓말이다)

“와아~ 우리나라 산 전체에 다 이렇게 했음 좋겠다!”

“그건 네가 커서 국회의원 되어서 그런 법률을 만들어라”

그러자 이번엔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는 동생이 얼른 대꾸를 한다.

“난 대통령 하기 싫어요!”

“왜?”

“대통령하면 골치가 아파서 머리가 하얗게 센데요”     


  뒤에서 따라 오는 어른들이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웃을 수밖에. 

옛날 요(堯)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은거하였으며, 또 자신을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 하자 그 말을 듣고 자기의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천(潁川)강 물에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를 도리어 뺨칠 우리의 애들이로구나!      

   

대통령도 하기 싫다는 대범한 오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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