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경수 Mar 08.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찬란한 봄날, 그리고 코로나


그저께는 유난히 날이 좋았다. 하늘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푸르렀다. 제1전망대에서 한라산 정상이 너무나 뚜렷이 보였다. 오신 분들이 모두 그 광경에 경탄을 하셨다.


그런데 겨우 하루 반짝하더니 어제는 비가 내리고 오늘은 다시 화창하게 개었다.

하루 걸러서 흐렸다 좋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형적인 봄 날씨이다.


3월 하면 나는 으레 오늘과 같은 날씨를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의 봄은 너무나 처참하다. 이 찬란한 봄빛을 시샘하는 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번 바이러스는 무증상감염을 일으킨다고 하니 더욱 힘들어졌다. TV만 켜면 세상이 온통 코로나 19이다.    

 

이 사태를 보며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야기이다. 

이 책은 1862년에 씌여졌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여 년 전에 쓰여진 책이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

 청년 ‘도지슨’은 크라이스트처치의 학장인 헨리 리델의 열 살짜리 딸 앨리스의 세 자매를 데리고 템스 강으로 소풍을 떠났다. 이때 그는 노를 저으며 즉석에서 동화를 지어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소녀가 토끼 굴속으로 들어가 땅속 나라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앨리스가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달라고 그를 조르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사양을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글로 써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단지 사랑하는 한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가운데 ‘붉은 여왕의 나라’라는 한 편의 동화가 있다. 중요 대목만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들 주변에 있는 나무며 다른 것들의 위치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어느 것 하나 뒤로 젖히고 앞으로 달려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두 다 우리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걸까?”

앨리스는 어리둥절해져서 생각했다. 여왕은 앨리스의 생각을 눈치챈 것 같았다. 여왕은 다시 소리쳤다.

“더 빨리! 아무 말 하지 말고!”

앨리스는 왜 빨리 달려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중략)

앨리스는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머나, 우리가 계속 이 나무 아래에 있었던 건가요? 모든 것이 아까와 똑같은 자리예요!”

“당연하고말고. 어떨거라고 생각했지?”

여왕이 물었다.

“글쎄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한참 동안 빨리 달리면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거든요.”

아직도 조금 숨을 헐떡이며 앨리스가 말했다.

“느림보 나라 같으니! 자, 여기에서는 보다시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만 해!”

여왕이 말했다.      

끝없이 달려야만 하는 붉은 여왕의 나라

이 동화는 쉬지 않고 달리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미래사회의 무한 경쟁을 예측하고 쓴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진화론에 접목시킨 사람은 미국 시카고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1935~2010)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1973년에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진화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결국 뒤처져서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붉은 여왕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번 코로나 19도 박쥐에 기생하다가 천산갑이라는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옮겨 왔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미쳐 항체를 갖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다. 그러면 왜 이 바이러스는 박쥐와 천산갑의 숙주를 버리고 인간에게 옮겨 왔을까?


이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이들도 여느 생물체와 같이 자기 유전자를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고 있는 숙주의 개체가 줄어들고 있다. 즉 자기 활동 영역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름대로의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중간 숙주가 줄어드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우리 인간이다. 천산갑이 몸에 좋다고 먹어 치웠으니까.

위기감을 느낀 바이러스들은 우연히 두 발로 걸어다니는 지구에서 가장 많은 족속을 발견하였다. 만약 저 족속을 숙주로 쓸 수 있다면 엄청난 발견이 될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또는 피나는 궁리 끝에 드디어 인간의 몸 속에 기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건 나의 황당한 가설일 뿐이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할 수 있는 정보를 다른 바이러스로 부터 얻었다면, 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또 다시 다른 바이러스에게 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이미 이런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코로나 이전에 '사스'나 '에볼라'가 있었다. 절대 황당한 상상이지만 백에 하나, 아니 수십 조만의 하나,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인간에게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찾아 올 수 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질병이 이렇게 발생하고 창궐했다. 그러면 인간이 과학의 힘을 빌려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어내며 대항을 한다. 끓임 없는 바이러스와 사람의 경쟁이다. 누군가가 멈추면 멈추는 자가 패배한다. 때로는 그 패배가 그 개체의 멸종을 부르기도 한다. 천연두 균은 그래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선수는 항상 바이러스가 친다. 그러기 때문에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인간은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어내면 바이러스는 다시 진화하여 그 틈새를 비집고 우리 인간에게 도전을 하고 인간은 다시 치료제를 만들어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의 예언을 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이다. 그는 2015년에 이렇게 예언을 했다.     

“오늘날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재난은 핵무기도 기후변화도 아닌, 전염성이 강한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다.”     

그는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약 탐색연구에 수만 유로(수천만 원)를 후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 물질 연구를 진행하는 벨기에의 레가 의학연구소에 치료제 후보 물질 1만5천 개를 사들이는 비용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의 예언이 현실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선각자들이 있어 다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제주에서도 현재 4명이 확진을 받고 입원 중이다. 

그 여파가 거문오름에도 미쳤다. 내일부터(3.9)는 1코스만 탐방이 가능하고 해설도 중지시켰다.

그러니 내일부터는 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 다른 데 가려고 해도 사람이 무서워졌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겪게 되는구나 느껴졌다.

그러나 부지런한 우리 해설사 선생님들은 인파가 드문 곳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봄 야생화를 찍어 카톡에 올려 주신다. 덕분에 나는 방안에서 자판기나 두들기면서 봄 야생화를 완상(玩賞)하는 복을 누릴 수 있다.          


변산일엽(정희준, 거문오름, 2020. 2. 26)


개구리 발톱(김정희, 왕이메, 2020. 3. 3)


박새(김정희, 왕이메, 2020. 3. 3)


중의 무릇(김정희, 왕이메, 2020. 3. 3)


변산바람꽃(김정희, 왕이메, 2020. 3. 3)


현호색(김정희. 왕이메, 2020. 3. 3)


개별꽃(권오택, 민오름, 2020. 3. 5)


천남성(신정미, 거문오름, 2020.3.6)


할미꽃(윤양선, 새별오름, 2020. 3. 7)


아무리 지독한 코로나19도 봄 기운에 세차게 피어오르는 꽃들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이 연약한  봄꽃, 어디에 이런 힘이 있었을까?

참으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