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8살 봄
입원한 엄마는 아이 곁을 기웃거린다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상추 위에 현미밥 한 덩이 올리고 된장을 얹어서 동그랗게 오므리는데 잠깐 멈칫, 울음이 터졌다. 그 와중에 내 손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듯 쌈을 입안으로 넣었고 곧바로 양손을 안경 아래로 집어넣어 눈물을 닦았다. 나는 입을 오물거리며 흐느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엄마 역할의 덫
그날 오전 엄마의 핸드폰으로 아동복쇼핑몰의 옷 사진 몇 개를 보냈다. 딸 선우와 통화하며 “할머니 핸드폰으로 옷 사진 보냈어. 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라고 전했다. 아이는 원피스도 싫다, 블라우스도 싫다며 반바지만 하나 골랐다. “여름에 물놀이 한 다음에 원피스 슝 입으면 편하잖아”라고 해도 이제 치마는 안 입는단다. 8살이 된 아이, 작년부터 핑크도 별로고 치마도 별로라더니 아예 눈길도 안 주기로 했나보다. 내키지 않는 옷은 절대 안 입는 걸 아니까 알았다고 했다. 반바지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7부 레깅스와 똑딱핀세트를 추가했다. 남편에게 금액을 알려주며 입금을 부탁했고 반바지 하나 값으로 과하다고 생각하겠지 싶어서 ‘레깅스랑 똑딱핀도 같이 했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선우가 레깅스랑 똑딱핀은 싫대” 오랜만에 교감이 순식간에 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잠깐 침묵한 후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전화했다. “여보가 선우한테 말했어?” 남편은 날 선 내 목소리를 감지하고 한숨 한번 쉬고 말했다. “어머니가 뭐 샀냐고 물으시길래 레깅스랑 핀세트 같이 샀다고 했더니 옆에서 선우가 듣고 자기는 안 입는다고 한 거야. 핀도 선우가 직접 고르는 게 좋기도 하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받아쳤다. “여름에 무릎 덮는 7부 레깅스는 필요해. 필요할 때가 있어. 내가 미리 주문해놓는 거야. 부모가 먼저 알아서 준비해줄 때도 있지. 일일이 아이한테 검사 맡아야해? 핀도 그냥 똑딱핀세트야. (10개 사도 어느새 하나둘 사라지는 아이템)” 서로 아무 말 않다가 남편이 말을 이었다. “봄에 산 9부 바지도 한번 입고 안 입어. 7부도 안 입는다니까” 나는 초점 없이 뭔가를 노려보며 얕게 식식대다가 몰아치듯 말했다. “그럼 만오천원 빼고 입금해”
선우가 입을 옷이니까 안 입겠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난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숨을 한번 내쉬었다. 감정은 선택할 수 있음을 떠올리며 나를 달래듯 눈에 힘을 풀고 핸드폰을 찾아 쇼핑몰 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기존 것을 취소하고 새로 주문을 했다. 배송지를 입력하면서 ‘이게 귀찮아서 그랬나?’ 나에게 물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점심 때가 되어 밥상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주유소 결제 문자가 왔다. 내가 이번 주에 차를 쓸 수도 있겠다고 했더니 미리 기름을 넣었나 싶어서 약간의 고마움을 느꼈다. 마음은 서서히 풀리는데 의문은 계속 맴돌았다. 갑작스럽게 치솟은 화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밥을 먹으며 ‘이래서 그랬나, 저래서 그랬나’ 이유를 찾아 나에게 되묻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상추쌈을 싸던 그때 마침내 답을 발견했다는 신호가 눈물로 왔다.
병원에 있는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지난해 12월 유방암 재발, 전이 진단으로 올 2월부터 청평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다. 4개월째다. 선우는 할머니 집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고 남편은 잠만 집에서 자고 아침, 저녁으로 엄마 집에 들러서 선우도 만나고 밥도 먹는다. 나는 서울 본병원에 진료가 있을 때 잠시 엄마 집에 들러 선우를 만난다. 그것도 4월쯤부터 편해진 일이다. 처음 두어 달은 선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무겁고 울적해서 되도록 자제했었다. 눈물 꾹 참고 잠깐 얼굴을 확인하는 영상통화로 선우와의 만남을 대신했었다.
보통 보름마다 보는 아이는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긴 시간과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밥과 간식 덕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었다. 미스터트롯의 노래와 가수 이름을 꿰며 흥을 뽐냈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배운 한글과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허리 다 나았냐고 물으며 자기를 안아보라고 두 팔을 벌렸다. 남편과 엄마에게서 들은 대로, 그들이 보내온 사진의 모습대로, 전화를 통해 본 선우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발 자전거에 도전하는 용기와 신중함, 그리고 “엄마 그네 타러 가자!” “엄마 난 수박!”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안심하곤 했다.
선우를 만날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선물했다. 선우가 좋아하는 과일이든, 초콜렛이든 뭐든 손에 들고 갔다. “이거 보니까 선우 생각나서 엄마가 사왔어” “선우 수박 좋아하지?” “초콜릿 맛있겠지?” 하고는 선우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는 “와와” 하며 반겼다. 꼭 직접 주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주문해 보내기도 했다. 우리밀로 만들었다는 냉동 붕어빵, 캐릭터가 그려진 스케치북, 학용품에 붙일 이름 스티커, 그림책 등등. “엄마 붕어빵 맛있더라. 또 주문해줘” 하면 신나서 곧바로 재주문했다.
선우와 떨어져 지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선뜻 사주진 않았을 먹거리와 물건들이다. 빵은 굳이 내가 사주지 않아도 할머니에게 사달라고 해도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다. 초콜릿도 마찬가지. 스케치북도 근처 문구점에 가면 직접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살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내고 싶었다. ‘엄마가’라는 말을 붙여서 엄마인 나의 존재를 잊지 말아달라는 듯이,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물건을 통해 알리려 애썼다. 아이가 나를 엄마로 인정하고 사랑하는지 자꾸 확인하고픈 마음이었다.
이번 레깅스도 그랬다. 아이는 덥다고 싫어할 줄은 짐작했다. 그렇지만 킥보드를 타거나 야외활동 할 때는 무릎에 상처 날 확률이 크기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럴 때 ‘짜잔, 엄마가 준비했지’하고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선우가 반바지만 기대하고 택배상자를 열었을 때 머리 묶고 한두 개씩 늘 꽂는 똑딱핀이 들어 있으면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지 않을까, 그럼 그때 ‘엄마는 역시 내 마음을 잘 알아’라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허리가 아파서 네달 째 병원에 입원해있는 엄마, 명상하고 운동하고 주사를 맞으며 지낸다는 엄마, 가끔 집에 왔다가 안아주고 밥 먹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보며 선우는 어떤 기분일지 집을 떠나올 때마다 궁금했다. 치료 일정대로 움직이다보면 어느 날은 저녁이 돼서야 아이와 첫 통화를 할 정도로 온전히 내게 집중할 때도 있고 선우도 선우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애태우는 마음을 흘려보낼 때도 있다. 나 없이도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남편과 엄마의 말에 안심하고, 얼른 집에 와서 선우한테 엄마 노릇하라고 재촉하는 사람 없음에 감사하면서도 가끔 이렇게 선우의 곁을 기웃거리며 동동댄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요?
병원에서 운영하는 심신통합치료 프로그램 중 하나인 코칭시간 때 남편과 선우의 캠핑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조리원동기들 네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캠핑에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다녀오겠다고 하면서부터 걱정이 시작됐다. 혹여 자기만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들지는 않을까, 예상치 못한 일로 상처받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 곁에서 즐겁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중간중간 전해 들으며 편해졌다. 그런데 다음날 캠핑이 마무리 될 쯤에는 느닷없이 남편에게 짜증을 부렸다.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하냐는 이유였지만 코칭을 통해 들여본 바로는 나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캠핑에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속상했던 마음이 그 순간 터져버린 거였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내 안의 욕구는 숨바꼭질을 좋아하나보다. 발견하려면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코치는 나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요?”라고 물었다. “솔직한 엄마요” 나는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고정된 ‘엄마’라는 역할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삼시 세끼 밥을 챙겨주지 못해도 당당한 엄마, 해줄 수 있는 것은 조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해주는 엄마, 놀아주지 않고 같이 노는 엄마, 자신의 경험을 아이와 그때그때 나눌 수 있는 엄마, 미안한 일에는 제대로 사과하고 부족한 점을 인정하는 엄마가 솔직한 엄마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얼마나 솔직한 엄마인가 다시 자문한다. 삶 안에 질병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가, 혹시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가 살핀다.
선우의 8살 봄에 내가 없을까봐 두려웠다. 할머니랑 간 놀이터와 피아노학원, 아빠랑 같이 먹은 짜장면, 아빠가 잡아준 자전거만 있고 병원에 입원해서 함께하지 못한 나는 기억 속에 없을까봐 애달았다. 라이트 동기인 그레이스님과 퇴원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오라는 사람은 없지만 아이 때문에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했었다. 장성한 자녀를 둔 그는 서두를 것 없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 잘 놀면 돼. 나중에 사춘기 때 엄마가 꼭 필요할 때 같이 있어주면 돼. 지금은 나중에 잘 기억도 못해”
위로가 됐다. 죽음의 미끄럼틀에 스스로 올라 탄 채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반드시 내가 꼭 준비하겠다며 입원을 거부하던 나는, 나의 건강성 회복에 확신을 갖고 지금 여기에 있다. 완전히 회복할 것임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평온함과 즐거움에 머물며 나아가고 있다. 백일을 지나 천일을 향해, 아니 매 순간 지금을 느끼며 여기에 고요히 머문다. ‘잘하고 있다’ 나를 격려하며 운동복을 입고 모자를 쓴다. 햇볕 쬐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