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을 잇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다른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셈페레씨가 운영하는 서점이 등장하고,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고 불리우는 바르셀로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관이 등장한다. 다만 이번 소설에은 다른 두 소설이 책, 서점, 문학, 작가 등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것과는 달리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 정권에 의해 유린당한 스페인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고 있다.
소설은 1939년, 그러니까 스페인 내전을 종식시킨 프랑코가 총통이 되어 바르셀로나에 입성한 해와 현재인 1957년, 소설 속의 현재 사이를 오가며 진행된다. 이 두 시간대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인물은 지금 현재 ‘셈페레와 아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페르민 로메로 데 토레스이다. 결혼을 할 여자가 있지만 왠지 결혼으로의 전력투구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 남자를 알고 있다는 어느 미스터리한 인물의 등장과 함께 소설은 시작된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살아 돌아와 미래의 열쇠를 갖게 된 페르민 로메로 데 토레스에게 13호”
이제 셈페레와 아들 서점의 아들인 다니엘은 그 메모를 들고 미스터리 인물을 쫓고, 이후 페르민으로부터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다. 그러니까 1939년, 프랑코 정권에 의하여 감옥에 갇혀 있던 페르민이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페르민이 탈출을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탈출 이후 페르민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왜 셈페레와 아들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 과정에서 앞서 이야기한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이라는 두 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바람의 그림자》에서 소설가로 등장한 마르틴은 이번 소설에서도 감옥에 갇히기는 하였지만 천재적인 소설가로 그대로 나온다. 또한 그 책에서 마르틴을 도왔던 문학소녀인 비서 이사벨라는 셈페레의 아내이자 다니엘의 엄마로 등장함으로써 두 소설 사이를 오가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물론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 대단한 존재보다 미미한 존재가 더 명예로운 시대와 세상이 있는 법이다.” (p.230)
미스터리한 소설이지만 시대 배경이 배경인만큼 흥미로운 여정 사이에서 반짝이는 메시지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내전 중에 이름을 잃었다가 겨우 페르민 로메로 데 토레스라는 이름을 얻었던 페르민, 그러나 감옥에서의 탈출 과정에서 아예 죽은 자가 되어버린 페르민... 그래서 페르민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 사랑하는 여자가 있음에도 결혼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게 된다면 분명히 이 미미한 존재 페르민이 이들을 억압하는 교도소 소장이었고 이후 문학계의 거물이 된 마우리시오 발스라는 대단한 존재보다 훨씬 더 명예롭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나름의 문학성을 잃지 않으며 독자를 향한 메시지 전달에도 소흘함을 보이지 않는 독자의 태도는 이번 소설에서도 여전해 보인다. 이와 함께 소설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 다니엘의 엄마인 이사벨라의 자매가 있다는 설정, 그리고 그 자매가 낳은 딸로 다니엘과는 사촌 사이가 되는 소피아가 등장하는데, 아마도 《천국의 수인》으로부터 기인하되 또 다시 전개될 다른 이야기의 복선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 김주원 역 / 천국의 수인 (El Prisionero del Cielo) / 문학동네 / 437쪽 / 2012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