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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4시간전

정보라 《저주토끼》

그로테스크 하게 표현되는 초현실이 현실에 거는 저주 같은...

  「저주 토끼」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래서 ‘토끼’다. 그것 말고 별도의 불문율도 있다.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 불문율을 어겼다. 소설을 읽으면 그럴만 하였다, 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발군이다. 김동식, 이라는 작가도 떠오른다.


  「머리」

  그로테스크하다.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리곤 했던 빠진 머리카락과 당신의 배설물과 뒤를 닦은 휴지 등,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린 것들로 인하여 제가 생겨났기에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p.39) 어느 날 변기에서 ‘머리’가 나타나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머리’는 그녀를 따라와 나타난다. 그녀가 아이를 낳은 후에도 ‘머리’는 나타난다. 죽여도 살아나 다시 나타난다. 그녀가 늙은 다음에도 나타난다. ‘머리’는 곧 그녀인데, 그녀는 늙었고 ‘머리’는 젊은 그녀가 되었다.


  「차가운 손가락」

  자동차 사고가 났고, 그 자동차에 타고 있던 이들은 선생님인데, 아마도 우리식 막장 드라마의 모티브가 될만한 치정에 얽힌 것도 같아서, 서로를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서서히 죽어가는데, 대화에서 대화로 이어지며 소설은 이어지고, 누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몸하다」

  몸하다, 는 월경이 나오다, 월경을 치르다, 는 의미이다. 처음 알았다. 그녀는 월경이 끝나지 않아 피임약을 통해 이를 조절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피임약의 부작용으로 (성관계 없는) 임신을 하게 된다(?). 의사는 피임약을 잘못 먹은 그녀를 탓하고 임신을 했으니 아이 아빠가 되줄 이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아이 아빠를 찾는 데 실패하고 그 상태로 아이를 낳게 되는데...


  「안녕, 내 사랑」

나는 내가 가진 최초의 인공 반려자를 1호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제 1호는 거의 폐기 수준에 다다랐고 나는 새로운 모델을 구입할 때마다 1호와의 동기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한 인공 반려자 1호의 마지막 선택은 내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덫」

<머리>를 닮은 작가의 그로테스크 지향 단편 소설이랄까. 황금 피를 흘리는 여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근친상간을 거쳐 식인으로까지 이어진다. 


  「흉터」

‘그것’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새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졌다가 탈출하고 다시 인간에 의해 싸움 노예가 되었다가 결국 동굴의 괴물에게로 다시 돌아가서 ‘그것’을 죽이는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까.


  「즐거운 나의 집」

음, 어쩌면 이것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 라는 말이 횡행하는 현대 사회를 향한 일종의 어두운 조롱일까. 자신의 집, 그러니까 건물을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그녀를 향한 다른 이의 악다구니, 바람 난 남편, 그러다가 죽어버린 남편, 그리고 아이이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모래사막 위에 떠 있는 배, 모래사막의 왕과 황금 배의 주인인 주술사의 악연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은 왕자를 낳았지만 보지를 못하고, 혼기가 찬 왕자는 공주의 노력 덕택에 주술로부터 풀려난다. 하지만 왕자는 공주를 마녀로 몰아 죽이려 하고, 모래 폭풍은 궁궐을 덮어버린다.


  「재회」

“그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인다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네 살 때부터였다. 그는 죽은 사람뿐 아니라 죽은 고양이나 개 혹은 말 등의 동물도 볼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죽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는 반투명한 사람이나 동물들이 주위의 사람이나 사물을 통과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저 재미있었다고 했다.” (p.316) 그러나 이러한 그를 사람들은 이해 해주지 않았다. 나는 매질을 당했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p.322)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보라 / 저주토끼 / 아작 / 326쪽 / 20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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