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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15. 2024

소노 시온 감독 <자살 클럽>

오싹하게 포장된 일본 B급 무비의 독창적인 자살 시퀸스...

  어느 저녁 지하철 역.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맑은 여고생들이 재잘재잘 잘도 떠들어대고 있다. 그리고 지하철이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음. 계속해서 떠들어대던 아이들은 승차위치에 정렬하면서 손에손에 깍지를 낀다. 그리고 힘차게 손을 흔들며 박자에 맞춰 외치는 하나, 둘, 셋. 구령이 끝나자 54명의 아이들은 달려오는 지하철을 향하여 한꺼번에 몸을 던진다. 허걱!!! 

 

  논리적으로는 왕창 엉성하지만, 피가 난무하는 이미지들만은 선명하다. 54명의 해맑은 여고생들이 단체로 지하철에 뛰어드는 오프닝을 비롯하여 잠깐 외출이라도 하듯이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간호사에 학교 옥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번 뛰어내려볼까 하며 아래로 몸을 던지는 고등학생들이라니... 

 

  처음에는 그저 우발적으로 벌어진 자살 사건이려니 하던 경찰들이지만, 인터넷을 통하여 자살한 사람들이 빨간 점으로 나타나고, 사건 현장에서 사람의 살로 만들어진 띠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자살의 배경에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경찰에 이 사건에 대한 제보를 하였던 ‘박쥐’가 일단의 미치광이 집단에 납치되고 살해당하면서 드디어 범인의 검거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던 십대 초중반의 여자 아이들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데저트’가 은근히 이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음이 드러나는가하면, 사건을 가장 근거리에서 추적하던 형사의 아들을 통하여 왠 아이와 통화를 하게 되고 (아, 정말이지 중간중간 쇳소리를 내는 아이의 전화 목소리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소름끼친다) 결국 가족이 몰살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학생과 실직자들의 자살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을 보고, 그 자살의 이유를 개인적인 데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은 그러나 왠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친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어떻게 독창적으로 자살을 그려낼 것인가 하는 점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어둡고 초조하며 불안하고 엽기적인 (다분히 일본스러운) B급 무비 하나가 리스트에 추가된다. 


  “당신과 당신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이야기와 이야기의 관계 짓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감독이 던지는 (영화 속에서는 꼬마가 전화를 통해 저 말을 하게 되는데, 꽤나 섬뜩하다.) 저러한 물음은 그래서 조금 공허하기까지 하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자살자들, 그러나 그러한 자살자들 앞에서도 그저 초연하기만 한 사회, 그저 한낱 오락거리로 전락하는 아이돌 혹은 아이들의 반란 등 두서없이 던져지는 메시지들은 그래서 오락가락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핏빛 이미지와 과도한 시추에이션만은 볼만하다. 사회적 스릴러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포물에 가까운 영화를 보면서 얼핏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 더 킬러>가 떠오를 정도... 비위가 약하다면 피해야 할 영화이지만, 독창적인 자살 시퀸스들에 관심이 있다면 들여다볼만 하다. 

 

 

자살 클럽 (自殺サ-クル, Suicide Club) / 소노 시온 감독 / 료 이시바시,  마로 아카지, 하기와라 시야 출연 / 99분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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