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Dec 16. 2024

아멜리 노통브 《제비 일기》

감각적인 제비 일기가 부활시킨 감각의 무의미함...

  항상 신선함을 무기로 자신의 소설 족적을 넓혀가는 작가가 이번에 도전하는 것은 감각상실 킬러이다. 소설은 갇힌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은 곧 여덜 달 전으로 되돌아간다. 실연의 상처를 입은 이후 그 아픔이 싫어 심장을 들어낸 주인공, 하지만 이런저런 감각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아픔을 참지 못한 주인공은 스스로 감각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를 끈다. (이 즈음에서는 왠 SF 소설인가 했는데, 그건 또 아니다...)


  “... 나는 감각을 모조리 죽여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일은 간단했다. 내 안에 설치되어 있는 감각 작동 스위치를 끄고 추위도 더위도 느껴지지 않는 세상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것은 감각의 차원에서 자살인 동시에 새로운 존재 방식의 시도였다.”


  그렇게 애인을 잃고, 직장도 잃고, 성적 욕망을 비롯하여 모든 감각을 상실한 나는 어느 날 당구를 치다 우연하게 만난 러시아 출신의 킬러를 통하여 킬러로서 새출발을 하게 된다. 놀이공원에서 곰인형을 싹쓸이 하는 데에나 쓸모가 있었던 타고난 사격술 덕분에 나는 ‘위르뱅’이라는 이름으로 킬러 생활을 하며 보수로 받는 돈과 함께 성적 욕망의 부활이라는 덤까지 얻게 된다. (심지어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살인 대상을 물색하여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작은 일을 잘 해내면 큰 일은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었다. 식품업계의 거물을 죽일 때보다 기자를 죽일 때, 그리고 뒤이어 장관을 죽일 때 한층 더 강렬한 쾌감을 맛보았으니까.”


  이처럼 만족스러운 킬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장관을 비롯하여 그 아내와 아이들까지 일가족 몰살이라는 청부살인 의뢰를 받는다. 선과 악을 비롯하여 감각과 윤리를 잊고 사는 내게 이러한 의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기 전 엉뚱한 상황 속에서 장관의 딸의 일기장을 입수하면서 나의 킬러 생활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모두를 죽이는 것은 물론 장관의 서류가방을 온전하게 가져오라는 명령이 있었으나 그 서류가방에서 일기장을 슬쩍 빼돌리는 우를 범한 나는 일기장을 읽는 와중에 집으로 돌아온 제비를 발견하게 되고, 제비를 죽이게 되고, 그 제비를 묘지에 가져가 묻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불현듯 ‘불감증이라는 갑옷’을 벗어버리게 되면서, 불감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불감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지마자 곧바로 다시금 그를 옭아맨 현실 속의 감옥...


  아멜리 노통브다운 설정의 독특함은 여전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과 그 완결성이 미진해 보이는 작품이다. 감각을 상실하고 킬러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나와 내가 발견한 한 소녀의 일기장, 그리고 갑작스레 등장하는 제비의 죽음과 일기장에 붙여진 제비 일기라는 명칭, 제비 일기를 씹어 먹는 행위와 죽음으로 완결되는 나의 사랑까지가 자연스럽게 이어붙여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감각의 유지가 힘에 부치는 세상...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해야 할 것 같은 우리들...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되살아나는 우리들의 감각... 감각의 재생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자초한 감옥에 갇히게 되는 우리들의 처지...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상실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날렵한 감각... 세상을 부연설명하는 대신 항상 자신의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 골몰하는 작가의 날렵함은 높게 사지만, 글쎄... 잠깐 언급되고 넘어간 소녀의 일기가 좀더 자세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이 킬러를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멜리 노통브 / 김민정 역 / 제비 일기 (Journal d'Hirondelle) / 문학세계사 / 128쪽 / 2007 (200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