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뉘앙스가 실체 없는 미래를 발목 잡으면...
때때로 책의 구매를 잠시 멈추고 냉장고 파먹기, 라도 하는 것처럼 서가를 뒤져 읽지 않은 책을 찾아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중간중간 포스트잇을 끼워 특정 페이지를 가리키도록 만든다. 포스트잇이 발견되지 않는 책은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미처 읽지 않은 소설 두 권을 쌓여 있던 책들 사이에서 찾아냈다. 최윤의 《파랑대문》과 김인숙의 《벚꽃의 우주》인데, 모두 2019년에 출간되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큰 냇물은 외로울 일이 없다. 냇물은 옆 마을을 지나면서 강과 만난다. 강은 유난히 빛나 마을의 어디에서나 시선을 잡아당긴다. 바람이 없는 날 강 위에 하늘이 들어찬다.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그곳을 구름샘 마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강 위로 구름이 부드럽게 일렁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 쉽지 않다. 그렇게 머물면서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p.9)
정우는 어려 백부가 살고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아버지의 사업이 일으킨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상미와 S를 만났다. S는 백부의 아들이고 나보다 조금 어린 사촌이었으며, 상미와 S는 어린 절친이었다. 나는 상미와 S 사이에 끼어들었고 마을의 여남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렸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였고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정우에게 부탁했다. S를 보고 떠나자고. 40도에 가까운 고열의 원인을 어느 의사도 찾지 못했다. 거의 한 달간 지속된 바이러스성 고열, 원인을 찾지 못할 때 나오는 진단명이었다. 정우는 마치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라도 한 것처럼 S의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정우가 제안하고 내가 동의한 것이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었다. S에 관한 어떤 소식도 공유하지 않는 것, 그건 우리 둘 사이의 일종의 계약처럼 되었다. S에 관한 한 각자 행동하자, 는 계약.” (p.48)
정우는 상미와 결혼하여 파리에 살고 있다. 정우가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현듯 사로잡은 불안감은 열린 문 사이에 끼워진 슬리퍼 한 짝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그것은 S의 시그니처 같은 행동이었고, 집 안에는 임신 중이던 상미가 쓰러져 있었다. 서둘러 병원을 찾았지만 십 년만에 두 사람에게 찾아온 생명을 살리지는 못하였다. 정우와 상미는 파리를 떠나 또다른 도시로 움직인다.
“... 정우는 사랑한다고 외쳤다. 사랑하지 않으면 어찌 우리가 되었겠는가. 우리로 커가면서 어찌 그를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나도 그를 사랑한다. 어찌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나의 사랑은 명사이고 그의 사랑은 잘못 선택된 동사일 뿐이다. 사랑의 결과 질이 달랐다...” (p.128)
정우와 상미의 결합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순탄하지 않았다거나 순조롭지 않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혹은 부족한 설명만이 가능하다. 왜곡되어 있어 애초에 바로잡기가, 끊임없이 부유하고 있어 생활 안으로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균열은 두 사람 바깥의 S에 의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내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 그의 소유가 된 물려받은 땅만은 유독 값이 치솟아, 건축업을 하던 지향이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 전원주택 단지를 짓게 되었다. 대성공이었다. S는 그중의 한 채를 우리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집 이름을 지었다. ‘파랑대문 집’. 그 집이 다 지어진 다음 우리 모두가 모여 집 마무리로 각자 붓을 들고 맘 내키는 대로 두 쪽의 나무 문을 파랑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다...” (pp.123~124)
오래전 구름샘이라는 이름의 마을에서 시작된 세 사람의 관계가 주를 이루는 소설이다. 오래전부터 작가를 읽어왔고 소설은 그로부터 멀지 않다. 예전에는 작가의 문장과 소설을 자욱하게 감싸고 있는 뉘앙스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여전함이 인고가 아니라 낙후로 받아들이게 됨이 당혹스럽다. 소설 속 세 사람의 과거(의 뉘앙스)가 그들의 미래(의 실체)를 발목 잡지 않기를 바랬는데...
최윤 / 파랑대문 / 현대문학 / 211쪽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