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 인문학이 그리고 문명 이전과 이후가 통합되는 지평선...
“평생 이런저런 결심에 이끌려 다닌 나의 인생은 이따금 느끼는 황홀과 이따금 느끼는 슬픔으로 이루어진 삶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의 인생과 그리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나먼 장소들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 그리고 그 갈망에 부응하여 그토록 큰 결단력으로 행동한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여한 의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의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pp.34~35, <들어가며> 중)
“... 많은 나라에서 먹여 살려야 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치명적인 가난 옆에서 부패한 부가 나란히 쌓여가는 시대에 문화적 영웅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고난의 규모가 영웅의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의 지평선은 우리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거라면? 우리를 지탱하기 위해 이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 (p.553)
지난 9월의 제주 한달살이에 동행하였던 배리 로페즈의 책 《호라이즌》을 얼마 전에야 모두 읽었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생각하면서 안이하게 구입하였다. 제주에서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하루에 삼십 페이지 정도 읽어야지, 라는 룰을 만들었다. 룰은 손님들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나름 지켜졌지만 방문자들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졌다.
“... 각각의 인류가 정확히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비교적 규모가 작고 고립된 인간 개체군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 개체군들 다수는 어느 시점엔가 서로 섞여 번식했을 수 있고, 또 그중 일부는 뚜렷이 구별되는 외형을 만들어주는 유전자들을 보유했을 수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상당히 비슷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몬트리올이나 싱가포르 또는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다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pp.505~506)
책은 여행기라기보다는 탐험기라고 불러야 한다. 그저 여행이라고 부르기에 작가인 배리 로페지의 발걸음이 닿는 곳은 모두가 의미심장하다. 그는 적도의 부근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뼈를 찾아다닌다. 부근 사람들로 구성된 원정대와 캠프를 함께 하고, 원주민들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남극 대륙에서는 지구 바깥으로부터 지구로 떨어진 운석을 발굴한다. 상상하기 힘든 시간 동안 그곳 얼음 사이에 갇혀 있던 것들이다.
“우리의 그레이브스 캠프는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지만, 전자적인 면에서도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위성 전화도 없고 BBC 같은 국제 뉴스 프로그램에 주파수를 맞출 장비도 없다... 나는 이런 종류의 고립이 주는 정신적 공간을 기꺼이 누린다. 여기서는 어떤 침범도 없고,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거나 선언을 듣는 일도 없다. 한 가지 생각을 끝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방해받을 걱정 없이 물고 늘어질 수 있다... 이런 고립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도록, 길게 이어지는 인류의 시대에 관해 숙고해보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이 장소의 이상함에 관해서도...” (pp.738~739)
그는 그렇게 남극과 북극, 아프리카와 호주, 태평양과 갈라파고스를 찾아간다. 그는 평생에 걸쳐 80여개의 나라를 다녔다고 하는데, (몇몇 곳이야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유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한 그는 자신이 방문한 곳곳에서 끊임없이 기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내부에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기록된 여러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오늘날 군사 용어로 쓰이는 부수적 피해라는 말은 의도치 않게 죄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된다. 16, 17, 18세기의 ‘탐험’과 그 후 이어진 공격적인 경제적 착취, 이후 유럽의 식민지들에서 정치적 영향력과 통제를 두고 벌어진 세계적인 다툼의 결과로도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오늘날 권력을 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런 피해들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하지 않으며, 평범한 사람들 역시 대체로 독재국가와 경찰국가뿐 아니라 유사 민주국가에서도 여전히 그러한 책략을 옹호하는 현대의 폭군들에 맞설 용기가 없다.” (p.107)
하지만 그의 탐험은 공격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대부분의 글에서 이전 방식의 탐험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기색을 강하게 표현한다. 그는 그 장소에 원래 있던 사람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을 품은 채 그 장소를 탐험한다. 책에서는 ‘원주민’ 대신 ‘선주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원주민이 가지고 있는 문명 이전에 살던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피하여, 그 장소에 앞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선주민이라고 표현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거대한 제국에는 거대한 야만이 함께하며 그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고, 그러니 야만을 벗어나려면 제국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명이란 것이 과연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직 갖고 있지 않은 무엇을 가져다 주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문명은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토록 가혹하냐는 질문도.” (pp.373~374)
작가가 견지하는 이러한 태도는 《호라이즌》을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매우 끈끈하게 통합되어 있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들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그곳 선주민들의 지혜를 받아들이기에 주저함이 없다. 이러한 여러 방면의 통합을 통하여 (자연과학과 인문학 이외에도 선주민과 이주민, 데이터와 체험, 지식과 지혜, 여행과 탐험 등등) 그는 또 다른 인류의 어른의 위치에 섰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주황눈숭어들과 함께한 그 일 분 삼십 초의 기억은 내 정신뿐 아니라 몸에도 새겨졌다. 나에게 이곳은 기적적인 것의 가장자리였다. 세상의 모든 귀퉁이에는 예상하지 못한, 하나로 통합된, 이름 없는 눈부신 삶이 존재한다.” (pp.452~453)
“... 언젠가 나는 책상에 앉아, 여러 다양한 문화의 공동체에서 만났던 어른들에게서 관찰한 특성들을 써 내려갔다. 그들끼리는 대부분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 어른들은 생명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주변 모든 생명에 대해 온화한 감정을 품고 있으며, 감정이입의 그릇이 남달리 큼지막하다. 그들은 다른 성인들보다 훨씬 더 다가가기 쉬우며,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이를 낮추어 보거나 아기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가 느끼는 경이의 감각을 인정하고 북돋운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은 마치 사라지는 것처럼 기꺼이 평범한 삶 속으로 스며든다. 그들은 청중도 인정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목록에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어른들은 말하는 사람일 때보다 듣는 사람일 때가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은 나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이야기할 수 있다.” (p.533)
배리 로페즈 Barry Lopez / 정지인 역 / 호라이즌 (HORIZON) / 북하우스 / 927쪽 / 2024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