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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작가의 '노트 한켠'에 적혀 있다가 이렇게 밋밋하게 모습을 드러낸...

by 우주에부는바람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이 추레해지곤 한다. 제아무리 환한 낮이라도 어슴푸레한 어둠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신경숙 소설의 힘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독자들의 느낌이 때로는 작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작가 또한 이러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작가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타박은 독자들에게서도 자주 듣는다. 내 소설을 읽고 나면 며칠은 마음이 가라앉아 평상심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즐거운 이야기는 쓸 계획이 없냐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패러독스나 농담이 던져주는 명랑함의 소중한 영향력은 나에게도 날이 갈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글쓰기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 밤에 문득 나는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일렁거렸다. 집에 돌아와 책상 위의 노트 한켠에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써놓았다...” (p.208)


그러니까 이 책은 어느 날 작가가 자신이 받았던 타박, 그리고 달과 마주했던 어느 순간 쓰기 시작한 어떤 메모 노트를 토대로 하여, 그 후 시간이 흘러 지금은 폐간된 어느 서평지의 청탁에 의해 씌어진 글들의 모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한껏 밝아진 신경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머의 최대치는 (하지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이 소설의 군데군데에 숨겨둔 유머를 몰라준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고작해야 아래와 같은 문장 정도가 아닐까...


“나는 술을 마시면 옛집을 찾아가는 버릇이 있어. 미래의 집을 찾아갈 순 없잖아.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말이야...” (p.45)


더불어 초승달과 반달, 보름달과 그믐달로 글의 대상을 나눠 놓은 것도 유머라면 유머가 아닐까... 하지만 작가 신경숙이 소소하게 적어 놓은 이 작은 이야기들, 달에게 들려준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유머러스하지는 않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질 법한 작은 이야기들의 총합 정도이고, 그 안에서 애써 신경숙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을 약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오늘 아침에 나는 이런 시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 브레히트라는 시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입니다...” (pp.97~98)


물론 몇몇 곳에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브레히트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위와 같은 시를 앞에 놓고 멈칫하였을, 작가를 생각하며 독자인 나 또한 잠시 멈칫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읽는 맛이라는 측면에서 전체적으로는 함량이 낮다. 정갈하다는 느낌 보다는 밋밋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조미료를 치지 않았다고 해서 저절로 음식의 맛이 정갈해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달에게, 라고 상대를 지칭해 놓아서 갖게 되는 어떤 모호함이 원래의 신경숙이 갖고 있는 장점이고, 이 ‘짧은 소설’이라고 명명된 이야기들은 앞으로 보여줄 신경숙의 어떤 글들의 원재료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 모음집을 읽은 우리는 어떤 소설의 소스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조금 앞서서 확인한 것은 아닐까. 이런 정도의 기대치를 갖고 읽는 것이 좋은 책이다.



신경숙 /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문학동네 / 210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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