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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용규 Mar 24. 2020

우리 집 재간둥이




2014년 12월 24일이었다. 어머니께서 지인분께 입양해 오셨는데 태어난 지 2~3개월 정도로만 가늠할 수 있었고 이 집 저 집 떠돌다가 온 상황이라 정확한 생일을 알 수는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무작정 데리고 갔지만 막상 키울 수 없었던 상황이라 이리저리 원하지 않는 떠돌이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사연이 있는 온기가 있는 동물에게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우리 집에 온 날을 생일로 정해주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날로 이름을 랑이라고 붙여주셨다. '사랑'에서 '랑'이라는 의미 었다. 수컷이었고 '랑'이라는 뜻이 한자로 사내를 뜻하는 의미도 있어 적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랑이가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약간 있었다 뿐이지 난 개인적으로 썩 달갑지 않았다. 가뜩이나 먼지를 싫어하는 나인데 강아지의 털이 날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허 구언 날 집안 곳곳을 오줌 바다로 만들고 사료도 이리저리 뿌려놓았다. 털은 또 어찌나 많이 빠지는지 흰옷을 입고 있으면 어느새 검은색 털이 달라붙어 있었다. 이런 일 때문에 은근히 나는 랑이를 골칫덩어리로 생각했다.


그런 랑이가 좋아진 계기는 우리 집에 랑이가 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머니께서는 뇌동맥류에 이상이 있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께서는 대처를 잘하셨고 조기에 발견된 거라 앞으로 주의만 잘하면 되는 상태이셨지만 아들인 나의 입장에서는 괜히 불효자가 된 것 같고 그동안 걱정 끼쳐드린 게 너무나 죄송했다. 그렇게 집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마침 랑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성인 남자 주먹 2개를 합쳐 놓은 정도의 크기로, 그것도 작은 떠돌이 생활에 주눅이 들어 허리도 약간 굽어져 있는 상태에서 소파에 앉아 눈물 흘리는 내 발 앞으로 와서 앞발로 내 바지 끝단을 건드렸다. 작은 소리로 낑낑거리면서 내 눈을 바라보는데 마치 이제 그만 울라는 느낌 같았다. 괜히 그런 랑이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동물한테서 위로를 다 받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그때는 랑이가 나를 위로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그 후로 어머니는 건강이 괜찮아지셨고 랑이도 애정을 듬뿍 받아 자신감이 넘쳐 그런지 굽었던 허리도 완전히 펴졌다. 그렇게 랑이는 알게 모르게 나와 우리 식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 되었다. 이제 7살이 된 랑이는 이제 나와 사이좋은 앙숙이 되었지만 나를 위로해주던 랑이의 그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었다. 그 눈빛이 생각날 때마다 사진이나 스케치로 랑이를 담아내고는 한다. 생각난 김에 맛있는 간식 하나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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