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체성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85페이지 제4회 첫 문장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정확히 6개월 전이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체적으로는 아니지만 제4회는 5번 정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자신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갖추기 위해서 해야 하는 생각들과 자세를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오리지널리티는 당연히 알 수 없고, 그 해답은 책이 아닌 밖에서 또는 내 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나라는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원초적으로 고민을 해보기로 하였다. 웃긴 일이지만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 자체를 하는 것에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일단 내가 표현하고 싶은 오리지널리티의 분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의 관심사는 디자인, 글, 사진, 음악, 역사가 있는데 이 중에서 디자인에서의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본인 특유의 목소리로 색을 만드는 가수처럼 나도 나만의 디자인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생각이 난 김에 나의 작업물이 간략하게 담아져 있는 홈페이지를 쭉 훑어보며 포트폴리오를 스스로 체크해 보았다. 경계를 두지 않고 매번 새로운 클라이언트와 다양한 공간들을 작업해온 덕분에 표면적으로 보이는 스펙트럼은 분명 그 넓이가 있었다. 다만 그 안에서 심도 있게 보이는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어느 디자이너나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면 “이 정도는 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남들이 할 수 없는 아니, 따라 한다고 해도 내가 하는 것만큼의 맛이 나지 않는, 그래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이 오리지널리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이런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나만의 오리지널리티 찾기 50%는 달성했다고 본다.
모던, 클래식, 빈티지, 엔틱, 인더스트리얼, 북유럽 등등 이런 거 말고 진심으로 나에게 가감 없이 물어본다.
난 나의 디자인에 무엇을 표현해보고 싶은 것일까?
이런 물음 속에서 한국이라는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평소에 한국적인 디자인은 무엇인가, 다른 이들에게 한국의 미, 한국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이다라고 명쾌하게 답을 해줄 수도, 그 답을 알고 있지도 못했다. 마치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왜 나는 그동안 주체 없는 디자인을 했을까. 그저 유행하는 스타일만 찾았고(물론 그로 인해 약간이나마 트렌드를 읽는 능력도 생겼지만) 클라이언트의 요구에만 맞춰주는 오퍼레이터 같은 역할만 했다. 돌아보면 서울의 궁궐을 좋아하고 사라져 가는 피맛골의 흔적을 찾아보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시간 날 때면 한국의 건축적 의미가 담겨 있는 명소를 답사하고 좋아하는 책이 조선왕조실록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인데 말이다.
산과 들로 여행을 자주 다니던 나는 때마다 접하는 한옥과 절 그리고 오래된 우리나라의 건축물들을 보며 감탄하고 동경했다. 2010년도 군대 전역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때 당시 100만 원에 달하는 니콘의 카메라를 사들자마자 북촌 한옥마을로 달려가서 사진을 찍었던 이유도 한옥을, 한국의 미를 좋아해서였다.
지금에야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갑자기 내일부터 디자인을 하면 한국적인 미가 뿜어져 나오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가지고 노력을 한다면 앞으로 충분히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즈음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백선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라 말씀하신 내용이 전부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짧게나마 인상 깊었던 말씀이 있었다. 선생님은 평소 A4 용지에 먹물과 붓을 사용하여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신다고 하셨다. 한자를 적으시거나 의미 없는 선들을 적게는 50장에서 많게는 300장 정도 그리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고스란히 묵혀두었다가 후에 꺼내보시고 거기에서 한국적인 아이디어를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선생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립하시는데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도 이와 같이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다.
20대에는 아크릴, 파스텔, 먹물 등의 어떤 물감으로 그릴지 고민하는 시간이라면 30대에는 선택한 물감으로 어떤 색을 낼지 그리고 40대에는 그 색으로 무엇을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하는 연속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한국의 미를 선택하였고 40전까지 어떤 색을 낼지 아주 재미있는 고민을 해야겠다.
50대에는 유유자적 놀러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