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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용규 Mar 31. 2020

두부 종소리

따뜻했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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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커피 한잔 하면서 거실 소파에서 쉬고 있던 나른한 오후. 창밖에서 오토바이가 멈추는 소리와 함께 두부 종소리가 들렸다. 정말 오랜만에 들린 반가운 소리에 눈을 감고 깊게 들어보았다. 지금은 마트에 가면 손쉽게 플라스틱 용기에 진공 포장된 여러 종류의 두부를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두부장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종소리를 울리며 두부를 팔았다.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가 없는 상황에서의 종소리. 그런 두부 종소리는 동네 슈퍼까지 가야 하는 부엌의 수고를 덜어주곤 했다. 그리고 펄펄 끓는 뚝배기 속의 된장찌개나 조림 등 여러 가지 반찬으로 식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고 있을 때면 두부 종소리가 들리면 알려달라고 하실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내 눈은 만화를 향해 있지만 귀는 두부 종소리만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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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오후에 두부 종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햇살이 적당하게 익어 노을로 가기 직전이었다. 오후 4시에서 5시 정도가 아닐까 생간 된다. 일단 두부 장수를 잡아야 한다. 엄마는 종소리가 들리면 창문을 열고 “아저씨~” 또는 “여기요~”라고 일단 멈춰 세운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오토바이는 종소리와 함께 희미해진다. 두부 장수도 일단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오토바이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두부를 담아낼 봉지를 만지작 거린다. 젊었던 우리 엄마는 잽싸게 내려가서 인사를 건네시며 보라색 천 원짜리로 두부를 산다. 우리 집은 빌라인데 가끔 옆집이나 윗집에서 창문을 열고 우리 엄마한테 내 것도 하면서 부탁을 하실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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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갓 사온 두부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엄마는 두부를 살 때 항상 두모를 사셨다. 한모는 저녁 반찬, 한모는 온기가 사라지지 않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두부를 바로 먹었다. 도마에 올려놓지도 않고 넓고 평평한 접시 위에 두부를 올려놓고 과일칼로 대충 자르신 다음에 간장에 바로 찍어먹었다. 참기름과 깨가 적당히 들어간 간장에 찍어먹는 따뜻한 두부는 그 맛이 정말 훌륭했다. 마지막으로 두부를 다 먹고 나면 적당한 간수와 부스러진 두부를 접시째 입안에 밀어 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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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겹고 따뜻하며 맛있기까지 한 추억의 두부 종소리가 창밖으로 들렸다. 왜 나는 그동안 종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일까? 너무 바쁘게 살아온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진 것인지,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이나마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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