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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18. 2024

[책 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가 빨치산이었기에 화자와 화자의 가족들은 세상과 싸워야만 했다고 한다. 화자는 빨치산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모순적인 모습들을 블랙 코미디라며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떠올려본 옛 기억들과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았을 때에 아버지는 단순히 빨갱이 이지만은 않았다.

딸을 무서워하는 아버지이기도, 어머니의 애인이기도, 동네 대소사를 혼자 다 챙기는 홍반장 이기도, 세상에 소외된 아이를 돌봐주는 넉넉한 어른이기도 했다. 사실 아버지가 빨갱이였던 시절은 아버지의 80인생 중 4년에 불과했다.

하나의 모습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 다양한 만큼, 그 가짓 수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한가지 면 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외면해버리는 내가 되지 않기를, 그런 한 편 모든 모습에서 좋은 사람일 수 없는 나 자신을 떠올리고 얽매어 후회만을 반복하진 않길.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내가 다른 사람을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 또한 나를 그렇게 받아들여줄거라 믿으며 살 수 있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회의로 시작했다가 끝내는 울어버리는 화자를 보면서 생각이 또 무거워지려다 ㅎㅎ 오늘은 요정도의 바램만 가지면서 책읽기를 마무리해본다.


"마지막 가는 길,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 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 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p98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빋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 p102


"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 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는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p110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 p138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p 147


"무엇에도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가 몇마디 말로 정의해준다 한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 p148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p181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p197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231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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