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나처럼 그랬어?
나는 지금도 한국과 일본보다 창원과 서울이 더 멀게 느껴진다. 그런 내가 대학교 3학년쯤, 서울의 한 광고대행사 인턴을 시작했던 때가 있었다. 창원에서도 깊이깊이 들어가야 하는 작은 동네에 살고 있던 나인데. 그런 나에게 서울이라니. 살면서 수학여행 말고는 잘 가본 적도 없던 나에게 서울이라니. 서울은 막연한 동경이자.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갑작스럽게 서울로 이사를 했고, 갑작스럽게 서울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해야 했다. 낯섦의 낯섦이었다.
첫 출근은 단어처럼 설레지 않았다. 서울 사람들이 무서웠고 첫 사회생활이 무서워 퇴근길에 왕하고 울어버렸다. 서울 사람들의 작은 삐죽거림에도 나는 금방 무너졌다. 매일같이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먹은 것을 토해냈다. 힘든 것을 토해내자. 상처를 토해내자. 아픈 일을 토해내자. 꽉 막힌 것들이 다 풀어지기 바라는 마음. 나는 살고 싶었다.
같이 살던 친구들이 갑자기 본가로 내려가게 되었고 나는 몸 하나 돌리면 물건이 부딪혀 떨어지는 작은 고시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보증금 없는 월 45만 원짜리 고시원. 작은 고시원 방에서 외로움은 더 크게 메아리쳤다.
아빠가 떠나기 직전까지 쓰던 휴대폰 번호로 매일같이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 목소리를 들으려고 매일같이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아빠가 있다는 느낌이 들면 자꾸 아빠한테 의지하고 싶어 지니까. 그럼 아빠한테 가고 싶어 지니까.
엄마의 일기장에 쓰여져있던 아빠가 출근길에 생각났다. 아빠에게 일이 힘들면 그만두자고, 붕어빵이라도 팔아서 살자고 말했지만 그만두지 않던 아빠였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아빠는 갔다. 책임질 것 하나 없는 나도 매일같이 출근이 괴로워 우는데 어깨가 무거웠던 아빠는 도대체 어떻게 버텼어? 버티지 말지 그랬어. 여유롭게 살진 못해도 아빠랑 지금 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빠는 대답이 없다.
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둘이서 오순도순 예쁘게 살 수 있었는데 내가 태어나서 괴롭힌 게 아닐까. 빛은 되지 못해도 혹은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빠, 항상 어른들은 나를 보면 아빠를 꼭 닮았다고 그래. 외모도 성격도 모든 것들이 그렇대. 그런데 난 아빠가 잘 기억나지 않아서 가끔은 나의 못난 모습을 보고 아빠를 원망하기도 해. 아빠가 있었다면 아빠만 발견한 내 예쁜 모습을 보고 칭찬해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랐을 텐데.
나는 쓸데없는 책임감이 많아. 아빠도 그랬어?
나는 바쁘면 예민해지곤 해. 아빠도 그랬어?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야. 아빠도 그랬어?
나는 많이 울어. 아빠도 그랬어?
아빠가 있었으면 이런 내 모습도 사랑해줬을 텐데.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