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럽다는 것의 진짜 의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어른스럽다는 건, 비단 위 사전적 정의만으로 설명하기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내가 정의하는 '어른스러움'은 조금 특별하다. 나이나 직위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그 사람의 '자기다움'을 보고 배울 것이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 땐 내 동생도, 후배도, 친구도 어른스러워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한 달 간, 나는 세 명의 어른에게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뿌리깊은 '자기다움'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함이 되고, 영감이 되었다.
첫 번째 어른은, 우연히 식사 자리를 함께 하게 된 분이었다.
몇 주 전 동료의 업무 상 점심 약속을 따라가게 된 적 있었다. 장소는 소박한 라멘 집. 우리가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었고, 나는 그 분을 처음 만나뵙는 자리인지라 조금 많이 떨려했었다. 어색하면 어쩌지, 내가 말을 잘 못하면 어쩌지, 그렇게 한참 긴장했더랬다.
그러나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 나의 긴장들이 무색해졌다. 내가 '대접'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큰 착각이었음을 드러내듯, 그 분은 너무나 편안하게 근황과 고민을 나눠주셨고, 심지어 우리의 법인카드 사용을 한사코 막더니 후식으로는 직접 차를 내려주겠다며 어느 찻집으로 우릴 안내해 주셨다.
찻집에서도 역시나 주객은 전도되었다. 차를 좋아하는 그 분은 차에 대한 풍성한 지식을 말씀해주시며, 우리에게 한 잔 한 잔 소중히 차를 따라주셨다. 심지어 잔이 빌 때마다 차를 계속 계속 채워 주셨다.
그러한 손길과 시선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내가 언제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아본 적 있었나?" 싶은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그 분은 따뜻한 성품을 갖고 계실 뿐이고, 숙련된 다도를 우리와 함께 해주셨을 뿐인데, 그 분의 그러한 '자기다움'이 내겐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끝으로는 우리의 두 손에 작은 선물도 쥐여주셨다. 약속에 한 사람이 더 오게 된 것을 뒤늦게 아셨을 텐데도, 나에게까지도.
누군가의 마음이 가닿아 불안이 씻기고 위로받는 느낌, 나아가 이 시간 내가 '일'과 '삶'의 경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 그 두 개가 내게는 굉장히 생소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왜 이렇게 감동을 받았나"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은 내가 그냥 그 분의 '자기다움'이 아름답다 생각했던 거였다. 감화된 거였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을 더 도와주고 싶고,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이 가진 무언가가 꼭 '열정'이 아니더라도 되었던 거였다. '자기다움'만으로도 충분한 거였다.
지금도 그 때 받은 선물을 부적처럼 책상에 두며 일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분이 차를 내려주셨던 티팟도 똑같은 제품으로 구매를 했다. 왠지, 그냥 그러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