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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25. 2023

나의 에너지는 어디에

23.07.25.화요일


간만에(?) 출근을 한 탓인지 오전부터 몸이 찌뿌둥했다. 아! 사실은 찌뿌둥한 것 이상으로 중대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있던 나는 배 안에서 발산하는 수상한 신호를 느꼈고, 그 신호에 따라 얼마 동안 고뇌를 경험한 다음 '인덕원역'에 하차하여 잽싸게 화장실로 달려갔던 것이다. 어제 먹은 훠궈의 영향이었던 것일까? 음... 매운 음식을 먹어도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어쩌면 훠궈의 매운 맛이 아닌, 그 안에 포함된 식재료가 끼친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 때 꽤나 진지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배설'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출근'이라는 강요된 필요에 순응할 것인가 하는 실존적인 고민을 몇 초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이 나를 데려간 것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의 어느 날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삶을 마감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미래의 관점을 획득한 나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인덕원역에 하차하는 선택을 내렸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초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부지런히 인덕원역 화장실로 향했, 아니 달려갔다. 달려갔더니 나를 마주한 것은 변기가 단 세 칸뿐인 낡은 화장실이었다. 인덕원도 아마 평촌 옆의 1기 신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화장실 역시 1기 신도시답게 구식 인테리어를 표방하고 있었다. 세 칸의 변기 중 두 칸은 현대식이었으나 마지막 한 칸은 일명 '푸세식'(재래식)이었는데 불행히도 그 마지막 놈이 나의 차지가 되고야 말았다. 나보다 딱 1초 먼저 들어온 사람 역시 배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왔는데, 때마침 현대식 변기에서 일생 최대의 위기를 해결한 한 남자가 퇴장하던 참이었고 그 행운의 사나이가 곧바로 자신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 변기 칸으로 돌진하는 것을, 나는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찌꺼기들이 '출구'를 그저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출구를 향해 떠나야만 했다. 나는 이 신성한 몸의 주인장으로서 그 찌꺼기들이 출구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야만 했다. 그렇게 재래식 변기와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이럴 수가. 똥 얘기만 벌써 몇 문단째 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그렇게 오늘의 기력을 모두 소진한 나는 회사에 약 15분 정도 지각하였는데 오전 컨디션이 심상치않았다. 어제 잘 쉬고 왔는데...!!!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 더욱 안 좋았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하는 최고의 시간을 맛보고 온 나에게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그 어떤 즐거움이나 보람을 줄리가 만무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팀원들이 주고받는 농담들이 같잖게 느껴졌고, 거기에 끼고싶지도 않았다.  동시에 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소외감도 느껴졌다. 특히 점심 시간에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갖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받아들일만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경우에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있다." 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해주었다. 반드시 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늘은 HR커뮤니티 인살롱에 기고할 글을 작성해야 한다. 최소한 초고를 작성할 예정이므로, 저널을 이쯤에서 마무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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