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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May 31. 2020

이생망과 삶의 의지

  그날 이후 유군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다 종종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어차피 이생망인데 그냥 해.”
“이생망인데 왜 고민해. 고민하지 마.”
“이생망인데 뭐 있어. 그냥 살아.”

  이런 말을 서로 하고 들을 때마다 둘 다 별다른 표정 변화조차 없다는 것은 이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인생은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앞으로 각자 무슨 거대한 일을 해내거나 이룬다고 할지라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무엇을 하고 어떤 이가 된들 자식을 잃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인 덕인지 그런 말을 할 때 억울하거나 슬플 것도 별로 없다.

  그러다 여느 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유군은 출근을 했고 나는 바이러스가 두려워 마스크를 꼭 하고 아침 운동을 다녀온 직후였다. 그때 순간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생망이라고 했으면서 나는 왜 이런 이른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 심지어 운동까지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인가. 이미 인생이 끝장났다면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활기찬 삶에 대한 의지가 아주 강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생각은 계속 이어지더니 이상한 점들은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내일 죽어도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정작 하루 일과를 들여다보면 뭔가 맞지 않았다. 눈을 뜨면 누가 시킨 사람도 없는데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 내고, 당장 급한 각종 집안일들을 챙기며, 계약이나 청탁이 있을 때든 없을 때든 글을 쓴다. 아침에도 했으면서 밤에 또 운동을 하고, 몸에 좀 나쁜 것들을 먹을 땐 양심의 가책도 느낀다. 마치 백 살까지 살고 싶은 사람 같다.

  이는 유군도 마찬가지다. 쉬고 싶으면 언제든 쉬어도 된다고 해도 꼬박꼬박 아침에 출근을 한다. 회사 일 외에도 책 계약이나 청탁이 있으면 글을 쓰고 역시 각종 집안일들을 챙긴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땐 마구 먹고 마시다가도 어느 순간 죄책감이 느껴진다며 멈춘다. 자신의 몸에 대놓고 해를 끼치는 것은 딱 하나, 담배를 피는 것이다. (그 탓에 내 몸도 해를 입는 것 같지만) 어쨌든 둘 다 뭔가 이상하다. 이미 망한 삶이라고 해 놓고 어째 망하기 전보다 더 정돈된 형태로 살고 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차피 망한 삶 속에서 나도 모르게 또 열심히 살고 있었다. 이미 결론도 났는데 이제는 내키는 대로, 그냥 막 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굳이 왜 이렇게까지 살고 있을까. 심지어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나아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인 예의와 도리마저 지키고자 노력하니 망한 삶이 뭐 이럴까.

  나도 모르게 또 이렇게 살았는데 뒤늦게 이유를 찾아본다 한들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이제야 들었으니. 그나마 떠오른 생각은 어쩌면 이것이 생존 본능인가 하는 것이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까 말이다. 죽을 것만 같이 괴롭고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죽지 않았으니까. 살아 있으니 살아 내려고 하는 마음. 그런 것이 혹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아닌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본능이라고 단정짓고 끝내기에도 석연치 않다. 그러기엔 그 결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최고가 될 생각은 없지만 최악은 되기 싫고, 이것저것 별 미련은 없지만 시끄럽고 복잡해지는 건 무섭고 부담스러운 마음. 되도록 평온하고 싶은 욕망. 이런 것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러니 그저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저것 따지고 살피는 것이다. 가만히만 있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나를 계속 살게 만드는 최소한의 무엇인가 보다.

  이렇게 깨닫고 직면하게 되니 스스로가 영 낯설고 일면 안쓰럽다. 안쓰럽다는 건 또 내가 그것들을 어느 정도 하찮게 보고 있는 탓일 테다. 인간을 살아있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 자체로 대단하고 의미 있는 것인데.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건 정말 다행한 일이고 축복받을 만한 것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찬사는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럴듯하게 말하고 보일 수 있어야 박수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은 마음. 그런 인생이 더 의미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 그 또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 있으니 스스로 이번 생을 망했다고 표현하는 것일 테다. 이제 그런 것들은 더 이상 꿈꾸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앞으로 가야할 길은 조금 더 보인다. 지금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생기고 남아 있는 삶의 의지를 꼭 붙잡고 살아가는 것. 그것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며 살다 보면 목숨이 다 하는 그날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대견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열심히 지고 온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후련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삶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바라보고 쓰면서 살아가겠다.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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