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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Sep 14. 2021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 하는 일

작은 생명들과 사는 삶

  화이자 백신으로 2차 교차 접종을 한 지 오늘로 18일째이다. 처음에는 1차 아스트라제네카 때보다 좀 수월하게 넘어가는 건가 싶었는데. 결론은 참 힘들게도 항체를 만든 모양이다. 도대체 그사이 내 몸이 왜 이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먼 훗날 누군가가 밝혀 주겠지. 늘 그러하듯이.

  살면서 이렇게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일들을 겪거나 혹은 목격할 때종종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스스로 다시 힘을 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내가 사는 이 생태계의 냉정함이 느껴진다. 적자생존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괴로움의 시간이 뒤에 한참 이어질는 꿈에도 모른 채 나는 접종 전날 오후 한 동네 책방에 들르게 되었다. 그날 오전에는 그동안 여차여차했던 두 번째 원고의 계약서를 썼는데 출판사 근처에 마침 그 책방이 있었다. 그곳의, 읽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띠지나 모서리, 표지에 흠집이 조금 난 책들을 따로 모아 둔 ‘무해한 책’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 것이다. 분명 태생은 다른 것과 같이 멀끔하고 빳빳한 새 책이었을 텐데.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제목처럼 그저 안아주는 마음으골랐던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렇게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는 그리하여 무려 18일 만 제대로 펼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동안, 사실은 더 이전부터 한껏 앓아 오느라 지친 내 마음을 꼭 안아주는 것을 느꼈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숨기고 참아왔음이 분명한 눈물도 양껏 쏟아 낼 수 있었다.


  속에는 온통 한 여자 아기와 늙은 개 한 마리의 모습들이 가득했다. 그 작은 두 생명함께 사랑을 나누고 또 부대끼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최근에 본 기사 내용 하나가 떠올다. 유기견은 초보 애견인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 때문에 생긴 상황이었다. 애초에 생명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 구조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런 상황도 생길 이유가 없었 것이다.

  사실 어떤 생명에게든 우리는 모두 처음이고 또 초보다. 다만 첫 만남의 계기와 각자의 사연이 다를 뿐. 함께 가는 여정에는 대개 행복과 고난이 두루 등장할 터이니 어찌하면 한쪽만 있을 수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은 큰 오해일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마음속 깊숙이 넣어만 두었지 알고 보니 그동안에도 전혀 아물지 않았던 상처 때문에 작은 생명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두려움앞섰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 정성 들여 써서 세상에 나 나에게까지 올 수 있었던 이 아름다운 이야기 덕분, 돌이켜보면 마음이 아파 애써 뒤로 밀어 두었던 순간들까지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때로는 너무 고단했지만 또 너무 각별했던 그 시간들을.


  세상은 말하기 쉽게 자주 우리를 비슷한 점으로 적당히 묶어 한몫으로 표현해 버리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우리이면서도 각자이다. 그렇게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온전히 알 수는 없어 오래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배움도 필요한 것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생명도 누구의 마음대로든 혹은 무슨 매뉴얼대로만 움직여 주지는 않는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더라도 그 자체를 그대로 한 번 지켜보고 받아들여 보는 것.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를 주고받게 되었다면 얼른 서로를 다시 안아보는 것. 이런 태도를 그때의 나도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나의 다른 생명을 대하는 미성숙했던 태도가 세상에 짧게 왔다 간 그 아이를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스럽고 슬프다. 그리고 지금도 너무 보고 싶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지금도 앞으로도 부디 나와 같지 않기를.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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