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 May 13. 2022

엄마와 요리 2

서로를 독립시키다

‘나 이제 정말 다시는 아무것도 안 싸 갈 거야.’


  작년 내 생일날, 그러니까 엄마가 나를 낳은 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직계 가족 등은 8인까지 모일 수 있어 부모님 댁에 갔다 돌아와서는 나는 가족 단톡방에 이런 톡을 남겼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의사를 여러 차례 표현했지만 이미 엄마가 나에게 싸 줄 몫까지 잔뜩 해 둔 음식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주는 대로 받아 들고 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받아오지 않기로 완전히 마음을 먹은 것이다.

  아무리 오래 생각해 왔더라도 어떤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대부분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이런 내 나름의 선언을 하게 된 것도 그날 우리가 헤어질 때 엄마의 표정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만나면 적어도 하루, 가능하면 며칠이라도 자고 가는 것을 원하시니 이미 전날에 가서 1박 2일 동안 애정이 가득 담긴 엄마의 밥상을 매 끼니마다 먹은 후였다. 같이 뭘 좀 하고 싶어서 나는 여전히 규칙도 잘 모르겠는 고스톱을 몇 시간이나 친 후였다. 그러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엄마는 다시 새로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재료는 이미 다 준비해 놨다면서 김장할 때 쓰는 큰 스테인리스 대야에 갑자기 잡채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미 충분히 먹고 마시고 떠들며 잘 놀고 즐거웠는데 이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좋았던 기분에 찬물이 확 끼얹어진 느낌이었다. 너무 오래된 패턴의 반복이니 기분이 더 금세 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딴에는 어쨌든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고 일단 참고 기다렸는데 그러다 한 시간이나 지나 버렸다.

  그사이 엄마는 도대체 왜 이럴까 계속 생각했다. 혹시 이런 식으로 내가 다시 돌아가는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은 아닐까도 싶었다. 딸이 어디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헤어질 때마다 다시는 못 보는 사람처럼 그렇게나 서운함을 표시하는 엄마이니 혹시 이런 식으로 나를 붙잡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후 나는 더 이상은 참지 못했다. 엄마에게 지금 시간을 좀 보라고, 이제 진짜 가야 한다고 재촉했고, 다 세기도 힘든 가짓수의 음식들을 싸다가 싸다가 결국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꼬라지를 내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의 반응이 전과 조금 달랐다. 이게 엄마한테 어디서 성질이냐고, 내가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나를 혼낼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는 내 예상과는 달리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단순히 슬픔이라고만 하기에도, 또 서운함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어딘가 잔뜩 외롭고 쓸쓸한 그런 표정으로, 그럼에도 끝까지 따라 나와서는 굳은 얼굴로 차에 올라탄 나를 바라보며 배웅했다.

  그런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난 후 나는 바로 결심할 수밖에는 없었다.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까, 나는 딸이고 엄마는 엄마니까, 엄마는 나보다 어른이니까, 내가 아닌 엄마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리 사랑의 표현이라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가 싫다는데 엄마는 왜 자기감정만 중요할까, 왜 자신의 불안을 나에게 넘길까, 때때로 원망하고 슬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나니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사람이었다. 딸을 어른으로 인정하기가, 딸의 독립을 인정하기가, 이제는 자신의 품에서, 자신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엄마가 아무리 아직도 나를 하루하루 먹여 키워야 하는 아이로 보고 있다고 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른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스스로 판단했을 때 어떤 상황에 대해 분명 잘못되었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그 누가 아닌 내가 해결해야만 했다. 진작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싫어서 상대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오도록 치사하게 구는 것처럼, 그렇게 그쪽으로 공을 넘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사와 나의 표현대로 행동 또한 정확하게 했어야 했던 것이다. 미안함을 핑계로 애매하게 굴지 않았어야 했다.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어떤 불편함이나 불안함도 내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저 말을 끝으로 다시는 엄마의 음식을 내 집으로 싸 들고 오지 않았다. 대신 만났을 때 앞에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사실 그것도 너무 많다,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만나면 맨날 요리만 하고 있는 엄마가 여전히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그것이 당신의 즐거움이라면 그 정도는 나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맛있는 것은 정말 맛있다고 감탄과 찬사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전에는 이러면 더 싸주니까, 이러면 다음에 더 하니까 그런 말조차 아끼고는 했었는데 말이다. 그저 우리가 함께 있는 이 시간,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자 했다.

  물론 그렇게 일 년 동안 마지막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잔뜩 만들어 놓은 음식들에, 이미 싸 놓은 꾸러미들에 또다시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평소에 별말 없던 아빠까지 나서 네 엄마 서운해하니까 이것만 가져가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정말 모두들 나를 나쁜 딸로 만드는구나 싶어 좀 슬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두 말하지 않는다. 헤어지는 그때마다 이제는 전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부모님 집을 나선다. 내가 이러면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행동해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엄마는 이래저래 십 년간 손을 놓았던 취미인 테니스 치기를 다시 열심히 하신다. 덕분인지 지난 주말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만나고 헤어질 때 우리는 전처럼 음식 꾸러미를 앞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함께 차를 타고 나와 집 근처 한강변 테니스장에 엄마를 내려드리고 작별 인사를 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물론 나중에 가방을 열어 보니 또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모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상황은 훨씬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이렇게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서로를 독립시키고 있다.

물론 전부 다 아직 그대로 있다.

일상의 이야기는 @some_daisy 에서

책들과의 만남은 @your_jakupsil_miji 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 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