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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Sep 04. 2023

회복의 시작

관계의 역사성

  “벌써 7년이야.”


  그냥 요새 자주 생각나네 싶었을 뿐 날짜까지 따지지는 못했는데 어제 아침 먹다 유군이 말해서 알았다. 나는 직접 품다 낳아서인지 12월 태어난 날을 꼭 기억하고 넘어가는데 그는 떠난 날을 기억하는 걸 보면 사람은 참 다 다르다 싶다.

  우리는 집에서 각자 할 일 하다 끼니 때 같이 밥 먹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요일을 보냈다. 이제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비통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억울이나 원망도 거의 사라졌다. 대신 아마 다시 있기 힘들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준 추억이 되었다. 떠올리면 그런 시절이 있었지 싶으면서 많이 보고 싶고. 동시에 볼 수 없음도 다시 순순히 인정하고.


  신기하게도 이렇게 나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때마다 꼭 은사님을 뵙게 된다. 학부 2학년 수업 때 처음 뵌 선생님께는 이제 별 얘기를 다 한다. 부모님께도 못 하는 얘기들을 한다. 선생님께서도 읽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의 가족들 친구들 얘기도 이제는 편하게 하신다. 오늘 뵈러 가는 길에 오랜만에 대학 동기가 톡을 보냈길래 쌤 뵈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자 ‘나이가 다소 많은 찐친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농담을 보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맞다. 이제 친구이기도 하다. 종종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헤어지는, 서로에 대해 관심이 있고 많이 아는 친한 친구.

  물론 지금도 칼 같으시긴 하지만 학교 다닐 땐 정말 너무 엄하셔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었는데. 오늘은 헤어질 때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자 계속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제 내가 너네들한테 배우게 생겼다고 수줍게 얘기하셨다. 나는 웃으며 “서로 배우는 거죠!”라고 말씀 드리고 얼마 전 책에서 봤던 관계의 역사성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어떤 관계가 역사를 갖기 위해서는 혼자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한쪽을 계속 따르거나 이해하는 건 종교에서나 가능한 일일 거다. 인간들끼리는 만나고 부딪히며 서로를 알아가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는 시간들이 쌓여야 관계의 역사가 생긴다. 비로소 서로 각별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면 고단한 인생의 커다란 지표와 의지처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이 그 귀하고 소중한 당신의 자식을 위한 길이 아닐까. 무엇으로 찍어 누르려 하거나 괴롭힌다고 해서 원하는 관계가 그리 쉽게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여 주는 만큼 아이들은 배운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늘 많은 학교들에서 있었을 멈춤의 시간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무나 오래 달라지지 않았고 진즉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늘 잃고 나서야 돌아보게 되는지.

상처받은 모든 분들의 빠른 회복을 빌며. 이렇게 부족한 글로나마 지지해 본다.

일상의 이야기는 @some_daisy 에서

책들과의 만남은 @your_jakupsil_miji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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