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수요광장
만 3·4·5세의 공통 교육과정인 개정누리과정은 2018년 6월 정책연구가 시작되어 7개월만인 2019년 2월 교육부에 최종연구가 보고되었고, 5개월 뒤인 2019년 7월 고시되어 2020년 3월 현장에 적용됐다. 2012년 제정되어 2020년 2월까지 약 9년간 적용된 기존의 유치원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개정하여 개정누리과정으로 현장에 적용하기까지 정책연구부터 현장적용까지 고작 1년10개월이 걸린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정과정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시 이후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준비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특히 개정누리과정은 교사 역량이 매우 큰 교육과정임에도 교사재훈련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6년 혹은 2017년 대학에 입학하여 2020년 2월 졸업 후 현장에 투입된 교사들은 마지막 졸업학기인 2019년 2학기에 기존 누리과정과 다른 개정누리과정으로 한 학기를 수업한 후 개정누리과정으로 변경된 현장에 교사로 바로 투입되었다. 원장이나 원감의 경우, 많게는 700~800명 규모로 이루어진 2시간 혹은 2시간30분의 연수, 교사의 경우에도 몇 백명 대단위로 이루어진 8시간 연수가 개정누리과정의 현장 적용 이전 공식적 재교육의 전부였다.
정책연구는 개인적 특권일 수 없다
최전선의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이
정책결정 시스템·문화로 정착돼야
개정누리과정과 연장선에 있는 유치원교사 양성교육과정 개선방안에 대한 국책연구 또한 지난 9월 마무리되었다. 충분한 현장수렴없이 이루어진 정책연구가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 아니냐, 결국 개정누리과정과 같은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 마무리 몇 주 전 해당 정책연구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으나, 유치원교사 양성교육과정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발제 30분, 이후 7명의 토론자가 각각 10분씩 토론을 한 후, 10분간의 질의응답을 거쳐 토론회는 2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토론자들의 토론뿐 아니라 실시간 채팅을 통해서도 유치원 교사 및 원감과 원장, 유아교육과 학생,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의견 수렴 과정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연구진 중 한 명은 FGI(6~12명 정도의 소수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교사 의견 수렴을 했다고 답변했는데 FGI에 참여한 소수 교사의 의견만으로 전국 단위 현장에 투입하는 국책연구에서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해당 토론회는 토론회라는 공론장에서 이미 발표한 원고에 대해서도 미공개 뿐 아니라 해당 토론회의 발제문과 토론문 일부를 공유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했다. OECD 국가 중 영유아교육의 이상적 모델로 평가되고 있는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는 국가수준 교육과정 개발에서 다양한 층위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특히 핀란드는 교육과정 개편과 동시에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절차와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공개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 유아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연구, 시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국책연구가 몇몇 소수 연구자의 의견만으로 마치 밀실에서 진행되는 듯한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그동안은 특정 정치인·연구자로서
부모와 교사 권리에 지나치게 치중
'교육에 대한 정책 연구는 필요한 사안마다 쓰고 버리는 카드'라는 자조적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교육부는 외부 전문가에 세부 정책 사안에 대한 연구를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장기적 계획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안을 특정 연구진에 의지해 메우는 방식으로 정책형성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개정누리과정과 유치원교사양성체제개편안에 참여한 연구진 중에는 기존 유아교육정책이 충분한 의사수렴과정 없이 개발되었음을 비판한 바 있으나 그 비판이 현재는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정책연구는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의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를 대변하는 특권일 수 없고 무엇보다 영유아는 자신의 의사를 정책에 개진할 수 없다. 그래서 유아교육정책은 영유아를 둘러싼 최전선의 의견을 다각도로 깊고 넓게 수렴하는 과정이 정책결정과정의 시스템과 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편향된 의견과 충분한 의견수렴 부족이 영유아의 행복한 삶과 배움보다는 특정 정치인, 특정 연구자, 노동자로서의 부모와 교사의 권리에 지나치게 치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