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옥 Oct 05. 2024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bOOk rEview

[수국의 꽃말은 변심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길거리 작은 가판에 놓여있었던 '무가지(무료로 나눠주는 신문이나 잡지)'가 사라졌다. 한 때는 작은 동네 소식부터 일자리 소개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전해주던 소박한 매체였다. 일본 지하철에 놓여있던 무가지에 6년 동안 연재한 '에세지' 중에서 14편을 추려 책으로 발간한 것이 후지와라 신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이다. 


신야는 1972년 처녀작으로 쓴 '인도방랑'으로 당시 일본의 젊은 청년들의 우상이 된 사람이다. 20대 청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열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인도를 여행하며 영혼으로 담은 사진과 글은 수많은 일본 청년들을 인도로 향하게 하였다. 그의 글은 인간의 고독과 허무, 연민으로 가득하다. 그가 전하는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로 이어지는 연민은 슬프면서 따스하다. 주변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진한 향수와 여운을 전하는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건 10년 전이다. 그가 전하는 14편의 이야기는 당시 나의 마음속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고, 아직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 '아름다운 슬픔'으로 남아있다. 


[2011 / 푸른숲 / 후지와라 신야]


우울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위로가 필요할 때는 그의 책을 꺼내 들고 임의로 선택되어 진 에피소드를 읽게 된다. 장대같은 비 속에서 수국만 찍는 사진가로부터 '수국'의 수수함을 알게 되고, 전화벨로 '오르골' 소리를 들려주곤 하던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소녀로 부터 첫사랑의 향수를, 남편과 오래 전에 사별하고 바닷가 낚은 집에서 홀로 살다 죽은 '도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사랑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14편의 에세이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에피소드는 '작지만 이곳에 행복이 있기를'이란 주제로 쓴 카페의 젊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한적한 국도에서도 좀 더 떨어져 있어, 좀처럼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곳에 '카페 메구미'이란 가건물이 있었다. 일부러 찾아들어가야 하는 허름한 카페 안에서 환하게 맞이하는 젊은 부부는 신야에게는 3년 째 단골이 되었다. 겉은 허름한 가건물이지만, 안은 하얀 페인트 칠로 화사하고, 서랍에 놓인 찾잔은 독일의 명품 도자기 '메이센'이다. 그 중에 눈에 띄는 두 개의 찾잔 밑부문에는 'meg'와 'hide'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지인 독일에서 주문제작한 찾잔일 것이라 저자인 신야는 상상한다. 


어떠한 사연으로 시골의 한적한 도로의 외진 곳에 가건물로 카페를 오픈했는지, 그리고 2년이 넘도록 화사하게 맞이하던 부부가 3년 째 되는 어느날 나란히 놓여있던 찾잔 하나와 부인이 보이지 않았는지,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시점에 다시 찾은 그곳에 카페 메구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한 때 나는 외진 길을 가다보면 혹시 '카페 메구미'같은 곳이 있을까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독일의 메이센 도자기는 은은하며 화려하다]


그의 에세이에는 정확한 결론은 없다. 그저 삶의 현상만 있다. 마치 인생의 여정 자체가 결론과 답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무던하고, 잔잔한 수묵화같은 삶이 투영될 뿐이다. 20대에 존재에 대한 열병으로 방황하던 그가 60이 넘은 나이에 조망한 삶은 여전히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점이 인상적이다. 결론없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그의 에세이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요즘도 나는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그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나도 언젠가는 그처럼 잔잔한 여운과 위로가 되는 글을 써보고 싶다.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다.
거기에는 자신이 마음을 희생한
타인에 대한 한없는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후지와라 신야 - 


작가의 이전글 삼성전자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