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학자P Jul 20. 2020

가장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영어입니다만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지난 3년 간 나에겐 엄청난 혼돈의 시기가 찾아왔다. 당시 석사과정 중이었기에 막연히 대학원부터 끝내자는 심정과, 이제는 진정한 평생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과,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 등등.

 그야말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막막하면서도 설렌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석사 졸업을 할 무렵, 남편 역시 일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사업은 의욕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계속 배우고 끊임없이 부딪혀야 했다. 그걸 보니 또다시 소심해졌다. 나의 모든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마침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을 하고 나니 일단 출산에 집중하고자, 어쩐지 미래 고민에 대한 시간을 번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임신 기간도 힘들었지만, 출산하고 나니 정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내가 다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막막해졌다. 늘 바쁘게 쉬지 않고 살아온 나였기에 육아도 그렇게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육아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업 시작 후 남편은 아나운서를 할 때보다 더 날아다녔다. 마치 이때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하나씩 이뤄가고 배워갔다. 나의 남편이니 그가 잘 되는 게 좋으면서도 궁금했다. 내가 볼 때 사업은 스트레스도 훨씬 더 심하고 이전에 하던 일과 비교도 안 되는 업무량이 24시간 주어지는데, 그는 정말 신나 보였다.


 "비결이 뭐야?"

 "난 가장 못하는 것을 이뤄봤잖아. 이제 나는 그 시작점이 달라. 무엇을 하든 아나운서 할 때보다 잘할 수 있어."


 그렇다. 남편은 어린 시절 언어가 느린 아이였고, 커서는 남들 앞에서 말을 못 하는 바보였다. 발음은 어떻고? 안 좋다. 그런 그가 피나는 노력으로 몇몇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하나야. 내가 가장 못하는 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성취를 했을 때, 그다음은 못할 게 없다고 믿었어.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아나운서들 중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하위권 일지 몰라도, 나는 내 삶에서 가장 못하는 일을 평균 이상으로는 끌어올린 셈이니, 용기가 생기더라고."


 그러니까 그는 남들의 시선보다 자기 발전에 초점을 두었던, 그야말로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그런 행복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조언을 했다.


 "여보는 여태껏 가장 잘하는 일들만 해왔잖아. 이번엔 가장 못하는 일에 도전하면 어때?"


 "뭐? 영어?"


 영어는 나의 엄청난 아킬레스건이었다.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영문과에 갔는데, 영문과 학생들이라면 발로 쳐도 나올 토익 760을 못 넘어 졸업 유예까지 한 이력이 있다. 대학교 3학년부터 회사 생활을 했으니 전공 수업은 졸업할 만큼 간신히 따라간 수준이었다. 그리고 사실 영문과 수업은 영어 실력과 상관없는 것이기도 했고. 그놈의 영어도 못하면서 영문과를 나와 망신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왜 영문과 나왔는데 이것도 몰라요? 그럴 때마다 멋쩍은 웃음 짓는 일이 일상이었다. 더 이상 긁힐 자존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영어 쓸 일이 없는 나의 일을 좋아했다. 방송뿐 아니라 예술고 문창과 나온 실력을 살려 다양한 글도 썼다. 하지만 정규직도 아닌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 지역 방송국에서 얼마나 더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고 무작정 예술학 석사를 시작했다. 물론 석사 과정에서도 영어 텍스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와 그런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커리어를 쌓으며 느꼈던 한계. 어쩌면 영어라는 나의 아킬레스건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지 않을까? 모든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과는 반대로 노선을 타게 되었다. 남편은 가장 못하는 일을 시작해, 이제는 자신이 자신 있는 사업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가장 잘하는 일들을 시작해, 가장 못하던 일에 도전한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해내 보자는 욕심이 들었다.


 어느새 나의 아이는 7개월이다. 나는 오디오북을 켜놓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 시간도 확보하고 영어 학원도 다닌다. 나의 목표? 영어로 갈 수 있는 가장 극한 한계를 목표로 설정해두었다. 그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조만간 밝히겠다. 이렇게 무모한 목표치를 세우다 보니, 세상에 공표하기에 나의 소심함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 이런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단한 용기를 낸 것이다. 내년엔 아기가 지금보다 커서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수험생처럼 공부를 할 수 있을듯하니 마음도 준비가 되겠지. 물론 나 같은 국내파 정도가 아니라,  위정척사파 수준의 영어와 담쌓은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분명 꽤 고단한 여정이 될 것이다. 


 가장 못하는 일에 도전할 때라니. 사랑하는 이가 내게 해 준 조언은 언제나 가볍지 않다. 일단 이 시작에서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건 머리로는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냥 무작정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 몰라. 일단 해. 안되면 말어.' 일단 하고 있는 동안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따지지 않게 된다. 일단 한다. 이 와중에 내 삶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약간 설렘이 들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