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라고 익히 들어왔던 산후조리원에 입성하게 된 데에는 나름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정이 무엇이든 간에 누구든지 요양시설인 조리원에 들어가는 궁극의 목적은 휴식이다. 하나 이 휴식은 아기를 안고 귀가하기 전까지만 허락하기에, 조리원은 육아에 돌입하기 전 잠시나마 워밍업을 하는 유예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기는 입소 즉시 신생아실로 들어갔고, 나는 입소 안내를 받고 안쪽에 '16번'이라고 적힌 산모 가운을 제공받았다. 가운으로 환복한 순간부터 나는 16번또는 16번 방 산모로 통했다.
가운이 넉넉한 사이즈라지만 불룩 나온 배와 심한 부종을 겪는 산모에게는 매우 적당한 크기였다. 나는 환복한 폼을 거울로 잠시 들여다봤다. 임신 중기에서 말기에 해당하는 몸매에 좀비 같은 안색에 있는 대로 부운 여자가 거기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이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쏟아졌다. 육신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통증에 시달렸는데 모든 관절이 조각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은 미역국처럼 탁해졌다. 잠시나마 느꼈던 아기의 체중이 손 끝에 남아, 자신을 잘 키울 수 있겠느냐고 자꾸 물어왔다. 남편은 탄식을 반복했다.
"일단 회복하는 것만 생각하고 쉬어. 아기는 여기서 잘 돌봐줄 거야."
그러면서 남편 스스로도 피로를 견디지 못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일찍이 겪은 적 없는 몸 상태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아기를 잘 지키겠다고 다짐할수록 버거워졌다. 이런 사람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해서 미안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내 이웃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뒤척임, 산후 통증에 내지르는 비명, 뜬금없는 오열이 순서대로 이어지면 수유를 알리는 전화벨이 울렸으니, 소음공해의 장본인은 괜히 제 발 저렸다.
내 상태는 위중한 것도 멀쩡한 것도 아닌, 그 중간 언저리 어딘가, 되게 아프고 슬픈 지점이었다. 무통주사로 알려진 경추 주사의 효력으로 산통이 줄었던 것이지 12시간의 진통이 아예 없었던 일이 된 것은 아니었음을 하루하루 몸이 알려줬다. 분만 시간이 짧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편은 상당히 피곤한 몰골로 아침을 맞이 했다. 더는 나를 위로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을 텐데, 남편도 인내와 폭발 그 사이 어딘가, 폭발보다는 짜증에 가까운 지점에 머물며 다른 아기들을 둘러봤다. 비혼주의, 저출산, 고령화를 문제 삼는 세상이라는 게 구라 같다고, 우리는 맥없이 평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극한으로 치닿고 있을 때 다른 부부들은 평온해 보였다. 사실 조리원이라는 그 독특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상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온화했다. 온도는 매우 따뜻했고 공간은 폐쇄된 채로 낮밤의 흐름이 불분명했다. 산모들은 똑같은 가운을 입고 다녔다. 다들 느릿느릿 실내를 걸어 다니고 제공된 음식을 먹거나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신생아실 아기들은 하나 같이 흰 속싸개에 누에고치처럼 정갈하게 싸여 있었다. 직원들은 가녀린 새 생명을 섬세하게 보살피며, 수유, 배변 등 건강 상태를 계속 체크했다. 산모들은 끊임없이 신생아실과 수유실을 찾았으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사랑을 담아 아기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기가 트림을 거하게 하고 푸지게 변을 보면, 모두 크게 흐뭇해했다. 모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아기였고, 온 세상이 사랑으로 충만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며칠 그 광경을 보다가 여기가 정말 천국이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편은 혼자 찌그러져서 우는 내게 어차피 젖도 안 나오니까 편안히 조리원 생활을 즐기라고 했다. 예전에 출산한 친구도 같은 조언을 했다. 조리원은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강조를 잊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도 비슷한 조언을 했다. 아기 케어는 맡겨 두고, 간식까지 빠짐없이 챙겨 먹으며 가급적 쉬라고 당부했다.
'쉴 시간이 없어.'
나는 다시 며칠 만에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몸이 아파서 쉴 틈이 없었다. 한 산모는 내게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프로그램이나 회복 요가를 수강해보라고 답을 해주었는데, 나로서는 조금도 지루할 틈 없이 아파서,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그녀를 눈여겨봤고, 결과적으로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아들 출산을 종용받던 그녀가 타인의 압박 때문에 계획에 없던 두 번째 임신을 하지 않았기를 기원한다. 물론 그녀 자신이 원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과정이 어떻든 간에 두 번째 출산을 하였다면, 참으로 축하할 일이며, 축복해주고 싶다.
이상한 소리겠지만, 나는 매우 당연히 산후우울증에 걸렸고, 이런 위험이 있음에도 아기를 기꺼이 낳겠노라고 다짐한 여인들을 아낌없이 안아주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