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알리는 뉴스 앵커는 제법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하늘은 잿빛인 채 누런 햇살을 창가로 투사했다.
나는 누워서 쪽창에서 보이는 광경을 바라봤다.
보이는 건 하얀 하늘뿐이었다. 지랄 맞은 미세먼지. 어느 순간에는 하얀 꿈속에서 계속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철분제를 주입하고 난 후로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허리 아래를 중심으로 퍼지는 극심한 통증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약을 먹고, 주기적으로 혈압검사, 피검사를 받았다.
"손 닦고 싶어."
출산한 지 하루가 지났다. 남편은 내 몸에 남은 핏자국을 수건으로 닦아줬지만 피 냄새가 온몸에서 가시지 않았다.
"몸이 이상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이 걸리겠지만 괜찮아질 거야."
나와 남편은 늘 해왔던 대화를 되풀이했지만, 분명 뭔가가 달라졌다. 우리는 몹시 피곤했고, 그저 쉬고 싶었다. 개그 담당이던 남편은 하루 사이에 늙어버린 얼굴로 힘겹게 웃으며 신생아실 면회를 갔다.
퇴원 전에는 아기를 보러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머슴밥 같은 환자식을 깡그리 털어먹었다. 아무 맛이 안 났지만, 미각과는 상관없이 몸에 이로울 것임을 확신했다. 게다가 수액과 액상 철분제 효과를 받아 저녁나절에는 수액걸이를 잡고 천천히 보행했다. 바늘이 박힌 바지를 입고 걷는 느낌이었다. 그쯤 되니 임신백과사전에서 본 '자연분만의 장점'이 생각났다. 산후 몇 시간이면 걸을 수 있고 회복이 빠르다는 그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씨발. 앉지도 못하는데.'
예수님을 앞에 두고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이때부터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그래서 이 시기부터 회복기 전체를 아울러 산'욕'기라고 칭하기로 했다.
다음날 심야에 아기와 처음 만났다.
신생아실 유리 너머로 속싸개에 싸인 아기들이 누워 있었다. 한 산모가 휴대폰으로 아기 사진을 찍었다.
"아고, 이쁜 내 새끼!"
그녀는 같은 감탄사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나는 몽롱한 정신에 그 광경이 왠지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졌다. 신생아실 간호사가 나를 불러 정신을 환기시켰다. 그녀는 피로에 질린 안색으로 아기를 안고 나왔다. 신생아실에서는 아기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나는 아기를 받아 안았다. 아기는 너무 작고 여렸고, 실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겠지만 자기 자신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처럼 입을 벌려 하품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나의 어설픈 수유 자세를 아기는 불신의 눈초리로 책망했다. 그럼에도 수유실의 어슴푸레한 조명과 서늘한 공기는 우리를 서로 의지하게 만들었다.
각자의 온기를 나눈 최초의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고, 아기를 불안히 안아주며 예감했다. 그리고 신체의 고통과 책임의 압박이 그림자가 되어 병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남편은 새벽녘에 힘겨워하는 나를 위해 진통제 주사를 요청했고, 줄곧 수발을 들었다. 이튿날 담당 교수가 퇴원을 미루도록 권했지만, 출산 당일보다 호전되어 예정대로 퇴원하겠다고 답했다.
회복이 2% 진행된 오후에 퇴원 수속을 밟았다.
몸은 오로지 옆으로 눕는 것만 허락하는데 일어서고 걸어 다니니 땀이 연신 이마에 맺혔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받을 무렵에는 우리 부부 모두 땀을 온몸으로 흘리고 있었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아기가 너무나 작고 연약한 것 때문인지, 나는 자꾸만 몸이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