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발은 상처투성이다. 비 오는 날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나갔다가 피부가 쓸려 내 살짝 벗겨졌는데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서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홀스빗 로퍼가 낡아져서 새로 구매를 하고 출장을 가는 날 처음 신었다. 그런데 너무 꽉 맞는 걸 사서 그런지 양쪽 뒤꿈치가 다 상처가 나고 말았다. 발 씻을 때 물만 살짝 닿아도 쓰라리고 너무 아프다. 걸을 때도 절뚝절뚝 걷는다.
침대에 누워서 잘 때도 밴드를 붙이긴 했지만 발 뒤꿈치가 이불 표면에 닿으면 너무 욱신거리고 아파서 한 가지 묘책을 생각했다. 조금 더 심하게 아픈 오른쪽 종아리 밑에 왼쪽 다리를 사이로 집어넣으면 공간이 생겨서 이불과 직접 접촉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하니깐 통증이 조금은 옅어졌다. 나름 요령을 피운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이게 지금 의사 선생님과 나와의 관계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심해서 세상에 내던져진 것 자체가 고통이고 힘든데 의사 선생님이 내 트라우마의 지렛대가 되어서 세상과의 접촉면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 조금 슬픔이 가시는 것 같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에 숨통이 트인다. 그래서 아무리 멀고 바빠도 꼬박꼬박 찾는 것 같다. 누군가는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고 했고 의사 선생님은 목발과도 같은 거라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그런데 내 생각엔 이건 의존처럼 보이지만 의존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우리는 처음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세발자전거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보조바퀴가 있는 두 발 자전거를 타게 됐고 어느 순간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발로만 자유롭게 세상을 달릴 수 있게 됐다. 의사 선생님과의 치료도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세발자전거 단계를 지나 보조바퀴를 달고 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INFP로 이상주의자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도시 생활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나 감정이 먼저 흐르고 공상과 낭만적인 감수성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대학생 때 처음 MBTI검사를 했을 때 INFP는 가계부를 소설로 쓴다고 해서 사람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이 있는 표현이지만 그만큼 INFP는 계산적인 관계를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한없이 진심을 주고받으려 하다 보니 상대가 먼저 부담을 느끼고 벽을 치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나날이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금 자기 파괴적인 자기 비하의 생각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마음이 힘들고 우울할 땐,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작가들을 떠올린다.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허난설헌 등의 삶의 궤적을 쫓다 보면, 조금은 내 삶이 이해가 가고 위로가 된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과 남녀차별적인 사회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지만 글쓰기가 구원이 되어주었다. 나도 성폭행까진 아니지만 성추행을 많이 경험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 심정이 공감이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러 가지 상처들로 인해 남편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고 고백하지만 남편은 그런 울프를 사랑으로 껴안아준다. 실비아 플라스도 남편의 외도로 인한 깊은 상처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허난설헌도 시댁과의 갈등으로 요절했다. 하지만 후대에 그녀들의 글은 천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문학사에 길이 남는 문인이 되었다.
가끔 나는 왜 사서 이렇게 고통을 껴안으며 살까 너무 아프고 힘들 때가 있다. 앞에서 열거한 버지니아 울프나 실비아 플라스, 허난설헌들에게 정신과의사나 상담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에게는 지금 정신과의사 선생님이 너무 고마운 은인이다. 지금 의사 선생님은 가장 오래 만났다. 그전에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었다. 내가 한 가지 몰랐던 건, 정신과의사나 상담사분들은 가족은 상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섣불리 내 동생을 상담해 주려다가 내가 먼저 상처 입고 지치고 말았다. 그런 데 그게 금기였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그래서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었는데 카페에서 여러 차례 강퇴를 당해서 중간에 그만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회가 얼마나 야박하고 냉혹했는지 알 수 있다. 선심을 베푸려는 시도조차 그렇게 차갑게 내동댕이치고 결국 불운한 결과를 내는 걸 보면...
INFP처럼 따듯한 심성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자주 오해받고 상처 입는 것 같다. 그런 세상의 무지와 냉소와 오해를 따듯한 언어로 되돌려주는 의사 선생님이 정말 좋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다. 사람이 오래 만나면 결국에 멀어지곤 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다르다. 그건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도 어떤 면에서는 나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게 아닐까? 의사 선생님도 어떤 상처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더는 짐이 되거나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 나 스스로도 계속해서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사색도 명상도 스스로 성찰도 많이 해야겠다. 내 발처럼 내 마음은 상처투성이지만 의사 선생님과 함께하기에 두렵지가 않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보조바퀴를 떼고 온전히 두 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