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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r 15. 2023

작가 지망생의 비애를 담은 사실주의 소설

현진건의 <빈처>

 현진건의 <빈처>는 그를 인정받게 해 준 출세작으로 1인칭 시점의 자전적 소설이다. 1920년대 지식인의 고뇌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 중에는 전통적인 양반 관료를 그대로 등용하는 인사정책으로 실업자가 된 이가 많았다. 새로운 계층 형성의 잠재력을 지녔지만, 친일 행각을 하지 않는 한 그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의 이런 현실적 곤궁과 지식 및 성공에 대한 갈망은 소설 <빈처>의 주인공으로 형상화된다.


 주인공 '나'는 독서와 창작에 매진하지만, 제대로 끼니조차 이을 수 없어 아내가 가재도구를 팔아 연명하는 처지이다. 이런 그에게 아내는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셔요."라고 타박하면 '나'는 아내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다가도 뒤틀린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식과 정신적 가치에 대한 갈망과 현실적, 물질적 충족에 대한 요구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그를 주변에서도 손가락질한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 애는 돈푼이나 모을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 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시러베아들놈!"


 나(필자)는 이 대사에서 분명 기시감을 느꼈다. 나에게는 본업이 있어서 곤궁한 처지는 아니지만, 지인, 친척들로부터 종종 주변 사람들과 비교당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의 존재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현진건은 비록 데뷔작인 <희생화>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지만, 이 소설 <빈처>를 통해 소설가로서 당당히 인정을 받는다. 근현대사 인물로 기억되는 작가도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과(대다수 작가들의 전기를 보면 무명시절의 서러움을 겪었다) 문학을 한다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주변의 질시 어린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다.


 작중 '나'는 아내와 경제적인 문제로 자주 갈등을 겪고 있지만, 아내가 해주는 인정과 위로에 큰 힘을 얻는다. 아내는 '나'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화를 내면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셔요! 저는 꼭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줄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래에 잘 될 근본이야요."하고 눈물을 흘리며 격려를 한다. 잠시 결혼한 것을 후회를 하던 '나'도 이런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하고 행복해한다. 이와 대비되는 처형 부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남편은 요리점과 기생집을 돌아다니고, 처형은 남편에게 맞았는지 눈에는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있다. 이런 모습에 '나'와 아내는 우리만큼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부부도 없다고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또한 처형에게 선물 받은 신 한 켤레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를 보며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이라며 중얼거리며 물질적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이러니를 극대화한 현진건의 대표작, <운수 좋은 날>처럼, 이 소설 <빈처>에서도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다. 지식과 정신적 가치, 그리고 부부의 사랑을 최고로 여기는 '나'지만, 한편 그 모든 것을 통해 세속적 성공과 물질적 욕망을 채우고 싶은 바람이...


 기실 가난한 아내라는 뜻의 <빈처>라는 제목이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결말에서 부부가 사랑이 벅차올라 함께 키스를 하며 끝나는 부분도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하고 처형과 비교되며 늘 가난한 삶을 살지만, 사랑만큼은 충만한 부부의 이야기. 작가지망생 '나'는 청빈과 성공 사이에서 모순적인 생각으로 갈등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갈등이 하나로 통합될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게 된다. 바로 작가 그 자신 현진건처럼 말이다. 나 또한 작가지망생으로서 현실과 꿈 사이에 모순을 극복하고 소설 <빈처> 속 주인공 '나'와 그리고 이 소설로 소설가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현진건처럼 인정받는 작가로의 통합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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