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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pr 11. 2023

무비판적 사고에 대한 비판

하야시 기린의 <동그라미 세상이야>


 하야시 기린의 <동그라미 세상이야>는 띠지의 문구처럼 ‘유행에 휩쓸리는 사회에 대한 유쾌하고 예리한 풍자’를 그린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을 덮고 나니 문득 대학생 시절 뉴스기사가 떠올랐다. 일명 고등학생들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점퍼 유행. 그때 난 그 뉴스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는 떡볶이 단추 코트가 유행했다. 나도 떡볶이 단추 코트가 입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 친구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했지만, 대학생이 되면서 점차 개성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학창 시절에도 약간의 개성화의 씨앗은 품고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나는 모두가 <수학의 정석>을 최고로 칠 때, 첫 장만 풀고 책장 깊숙이 넣어버렸고, 과외공부도 거부하고, 아이돌도 좋아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문학책’과 ‘만화책’,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더해 ‘애니메이션’과 ‘게임’도 정말 좋아했다. 나는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 교사 같다.


 이 그림책은 좀 더 깊이 읽어나간다면 단순히 유행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에 대한 은유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인이라면 일을 대하는 태도, 자세 같은 것 말이다. 단순히 주어진 대로, 조직의 틀 안에서 관습적으로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며 창의적이고 개성적으로 일을 개선해 나갈 것인지 하는 것 말이다. 가끔 어떤 관리자나 동료 직원들은 구태의연한 일처리 방식을 답습하며 너무 열심히 하거나 뛰어난 성과를 거둬도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싫어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불리한 일을 몰아주거나 함정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것도 어쩌면, 이 그림책 <동그라미 세상이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처럼, 보통의 것들에 길들여져 새로운 것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겐 새로운 것들이 너무나 피곤한 게 아닐까?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최신형 스마트폰에 대한 불편함처럼.


 이 그림책 <동그라미 세상이야>에서는 맨 처음 동그라미가 대유행하다 큰 사고가 벌어진 계기를 통해 세모가 유행하고 곧 세모의 유행도 막을 내리고 네모가 유행할 것처럼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나는 한 때 내가 컨버스화를 새로 신고 오자마자 친구가 똑같은 모양의 컨버스화를 새로 사 온 것을 보고 속으로 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또는 내가 새 귀고리를 샀다는 이유만으로 신경질을 내던 친구도 있다. 반대로 조금 다르고 튀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들만의 절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 그림책 속 세상에 비추어보면 동그라미가 유행할 때는 세모를 추구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비난할 것이고, 세모가 유행할 때는 네모를 추구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비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가는 이러한 세상을 비판함으로써 유행이나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이나 기준을 갖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같이 방을 쓰는 친구의 것보다 내 가방이 훨씬 고급일 경우에는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정말 똑똑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가방이 더 고급인지 따위에 신경 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어쩌면 이런 생각자체가 획일적인 세상에서 기인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서열화가 매겨질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상이 오면, 저마다가 추구하는 생각, 철학, 소유물 등에 순위를 매길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값진 보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단순한 유행이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알찬 내면과 결실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동그라미가 좋다고 생각하면, 그 동그라미가 왜 좋은지 이유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단순히 다른 사람이 좋아하니깐 나도 좋아가 아니라,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동그라미의 특별함, 동그라미가 갖고 있는 자산을 알아보는 능력 말이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좋아해서 동그라미가 좋은 사람과 자기만의 안목으로 동그라미의 특별함을 발견한 사람의 좋아함의 농도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건,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자세가 아닌,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안목과 철학이란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소유하든, 무엇을 추구하든, 나만의 확고한 주관을 갖자가 이 책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닐까. 무비판적 사고가 아닌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자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는 생각이 든다. 동그라미든, 세모든, 네모든, 아니면 이 모든 게 합쳐진 괴상한 모양이든, 단순히 유행을 좇을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견해를 갖출 수 있도록 단단한 내면을 만들어가자! 그렇다면, 나와 좀 달라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것이 나타나도, 익숙하지 않아도, 모두가 존중받고, 모두가 진정한 개성화를 이루는 유토피아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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