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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yun Aug 07. 2020

완벽주의와 이별하기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벽주의가 미치는 해로움


완벽주의란 무슨 일을 할 때 완벽하게 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완벽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완벽주의 성향은 강한 동기부여를 해주고, 목표에 대한 집중력도 높여준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천재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완벽을 추구할 뿐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보통의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완벽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일이 더 많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강박과 불안을 느낀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이상한 고집과 욕심이 있는데 ‘제대로! 정석대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틀린 말이 하나 없지만, 모든 일을 그런 방식으로 한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제대로 일을 끝낸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크게 상심하여 하던 일을 그르쳐버린다. 몇 가지 간단한 예는 아래와 같다.


e.g.1. 시험기간에 교양과목 벼락치기를 할 때의 일이다. 핵심만 뽑아서 외워도 모자랄 판에 기초 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공부지!’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초반에 빡세게 달리면 시험 범위에 반도 못 미처 지쳐버리곤 했다. 지칠 때쯤 날이 밝았고 나는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답답하다. 과거의 나에게 ‘그럴 거면 벼락치기를 하지 말고 학기 초부터 개념을 세웠어야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e.g.2. 다이어트도 그렇다. 초보가 하기엔 너무 타이트하게 운동 일정과 식단을 짠다. 그리고 기껏 열심히 운동을 하고 와도 동생이 먹는 치킨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나도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러면 치킨을 적당히 먹고 다시 다이어트 기조를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치킨을 먹고 '아 오늘 다이어트는 이미 망했다'라는 생각으로 다른 음식들도 마구 먹는다. 이건 솔직히 지금도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다.


e.g.3. 신입시절에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기분 좋은 일이 있을 순 없지만 잔잔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지금에서야 느낀거지만 회사생활에서 평온을 유지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가끔 회사에서 악성 민원인의 전화를 받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요구나 허무맹랑한 욕설을 들으면 그 순간 너무 화가 난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걸 빨리 잊어버리면 될 텐데 떨쳐내지 못했다. '오늘 기분은 안 좋다'라는 생각을 기본값으로 정해놓고 다른 좋은 일이나 보통 일들이 생겨도 그 생각을 되새김질했다. 이건 다행히도 연차가 차면서 조금씩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주의의 2가지 문제점


위 예시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2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저히 성공할 수가 없는 구조며,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닌데 완벽한 이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려다 보면 괴롭기만 할 뿐이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내적으로 부단히 노력해도 도달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생각지 못한 외부요인에 의해서도 쉽게 무너진다.


두 번째는 목표를 좇다가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사과에 벌레 먹은 흔적이 있으면 그 부분만 도려내면 나머지 성한 부분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흠집이 생김에 동시에 사과 전체를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비합리적인 일인가.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인해 다시 살릴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망쳐왔다. 내가 그리던 완벽한 상황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줄 알았다.





완벽주의에 대한 처방


1. 만족모형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는 첫 번째 문제점에 대한 처방으로는 Simon의 의사결정모형인 ‘만족모형’을 떠올렸다. 학자들이 수많은 모형들을 제시했지만 나에겐 그저 외워야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근데 만족모형은 공부하던 중 ‘앗 이거다!’ 싶었다. 하드커버의 두꺼운 책에 있는 이론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머리로 읽다가 마음에 와 닿은 모형이랄까. 만족모형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합리모형을 같이 설명해야 한다.


합리모형에서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방식을 따르는 경제인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대안을 탐색해보고 가장 합리적인 최선의 대안을 선택한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모든 대안을 탐색해볼 수도 없고, 모든 상황을 꿰뚫는 전지전능한 능력도 없다. 전제조건 자체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합리모형이 완벽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모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규범적이고 이상적인 모형은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에 만족모형의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행정인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 만족스러운 대안을 선택한다. 몇 개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최초의 대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점이 매우 현실적이고 서술적이다. 거의 모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이론 또한 학문적 한계점은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보충하고 싶은 점은 세워놓은 기준을 충족한 첫 번째 대안을 선택하기보다 그래도 제한된 합리성 내에서 기준을 충족하는 여러 개의 대안 중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나는 합리모형을 보면서 핵심이 아닌 부분 같이 과감히 버릴 건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 다짐했다. 무슨 선택을 할 때 내가 가진 제한된 합리성 내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을 하도록 마음을 다잡곤 한다.


합리모형과 만족모형 비교




2. Keep going


목표를 좇다가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Keep going’이란 말을 되새긴다. 한창 취업준비로 고민이 많던 시절 나는 계획하던 일이 잘되지 않으면 그동안 해오던 걸 포기해버리곤 했다. 허무주의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나에게 “넌 뭘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해? 그러든지 말든지 그냥 오늘을 충실히 살아.”라는 말을 했다. 하던 일이 조금 틀어졌다고 좌절하지 말고 묵묵히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사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보다는 ‘티끌 모아 티끌’이란 말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조금씩 뭘 한다고 크게 바뀌겠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꾸준함’의 위력을 느끼게 되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서 쌓아 올린 사람들의 결과물은 튼튼하고 견고했다. 작은 것들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역량이 되고 자신감이 되었다. 묵묵히 해나가면 대단한 것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쉽게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작은 흠집이 생겼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흔들리지 말고 차근차근 내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Keep going.






완벽주의와 이별


이런 성향이 쉽게 고쳐지진 않았다. 지금도 가끔 이런 성향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이런 글은 천재나 성공한 엘리트들이 써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어울리지 않는 건 얼른 떨쳐버려야겠다. 완벽주의 이제 안녕!






20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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