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단 정선옥 Jun 18. 2024

홀로 산행한다는 건!

삼일 전부터 계속 기분이 가라앉으며 다운되고 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움직이기 싫고 위축되기까지 한다. 

특별한 일도 없었고, 가족과도 별 문제없고, 가까운 이들과 도 여전했다.

그동안 됐던 가장 큰 이유는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아침 일정을 포기하고 산행에 나섰다.

이럴 때는 혼산(혼자 산행)이 최고의 약이다.


따뜻한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갈까?

아니 날씨가 예사롭지 않게 더우니 시원한 커피가 낫겠지?

과일은 사과가 보이니 사과 한쪽 가져가자!

시원한 모자, 가벼운 옷차림, 발목보호대까지 준비해서는 집을 나선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청계산이 있고 십여 분만 걸어가면 숲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6월 중순 지금 숲 속은 녹색이 흐르고 있다.



보통 때 같으면 무조건 발소리에 집중하며 근심, 걱정을 접고 마음을 쉬지만 오늘은 나의 다운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번에는 관계에서 오는 위축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요즈음 내게 일어난  변화가 뭐가 있었지?"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번 위축은  6개월간 지속되는 어깨 통증에서 오는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눈앞에 긴 계단이 펼쳐졌다.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새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새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이 숲 속 공간에는 지금 오로지 나와 새 둘만이 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새소리를 들어보자~~

이제 겨우 숲 속으로 들어온 지 30여분이 지났을 뿐이고

더군다나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이기까지 하는데

마치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호젓이 홀로 있는 기분이다.

무섭지는 않았고 마치 이 공간이 나의 근심을 꺼내서는

이리저리 관찰하고 연구하는 비밀스러운 장소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아무래도 이번 다운은 어깨 통증에서 오는 거였다.

좋아하던 요가도 못하고 외출도 자제하면서 오랫동안 치료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질 않고 있어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짜증이 올라온 거였다.

몸의 통증으로도 이렇게 위축될 수 있는 거구나.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자주 통증이 올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위축이 되어야 하는 걸까? 급 어두워지는 마음 앞에 계단보다 더 힘든 깔딱 고개가 나타났다.

기운 내자~~~!!!



천천히 밧줄을 잡고 편안한 곳으로 한 발씩 디디며 올라와보니 저어기 앞에 앉을 곳이 보인다.

정상은 아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오기로 마음먹었던 장소이다.

앞이 살짝 트여있어서 전망도 조금은 보이는 곳이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까지 온 것이다.  

잠시 쉬어가야겠다.

집에서 준비해 온 라떼와 사과 한쪽을 베어 물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이고  아파트와 조그만 마을이 보인다. 빠른 속도의 산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느끼며 목적지까지 올라왔다.

내 나이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어깨 통증을 경험하고 극복하며 살고 있고 나 역시 똑같이 생로병사의 한 부분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님에 감사하며 느긋하게 치료받자.

그렇게 마음먹는 것만이 나에게 평온함을 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달달한 라떼를 마셔서인지 사뭇 힘이 나는 것 같다.

이제 올라왔던 깔딱 고개를 작은 걸음으로 조심히 내려가자.



올라올 때보다는 사뭇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몇 해 전에 어깨가 아파서 걱정이 크다는 이웃친구의 고통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낸 것이

떠오른다. 순간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녁에는 안부도 물을 겸 전화해 봐야겠다.

이것이 혼산이 내게 주는 에너지이다.

그렇게 자연에게 앞으로 살아갈 에너지를  받으며

나의 비밀공간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이과 여자의 운명적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