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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이 Dec 05. 2019

나는 35살까지 죽어 있었다

수천수만 명의 병사 중 이름 없이 죽어가는 일반 병사 같았다

35살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2년 6개월째다. 기존에 하던 일 대신 다른 일을 찾아서 해보겠다고 퇴사했다. 빅데이터 관련 일을 해보겠다고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아보기도 했고, 사업을 해보겠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기존에 하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정확히는 월급쟁이가 되어야 한다.

      

은행 잔고를 살펴봤다. 퇴사를 하던 순간부터 계속 줄어가고 있는 내 은행 잔고. 회사 생활을 하지 않고 이렇게 돈을 벌지 못 하는 상태라면 길어야 3~4개월을 버틸 수 있을 뿐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대로 월급쟁이로 돌아가면 그간의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너무 우울할 것 같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고 사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봤다.     


수천수만 명의 병사 중 이름 없이 죽어가는 일반 병사 같았다

나는 삼국지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60권짜리 삼국지 만화도 여러 번 읽었고, 소설 삼국지도 많이 읽었다. 삼국지에는 많은 장수들이 등장한다. 그들끼리 세력을 나눠서 계속 싸운다. 장수 한두 명이 몇천 몇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나가 싸운다. 어릴 때는 내가 그런 장수 같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난 장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직장에서의 나는 장수가 아니었다. 몇천 몇만 명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 병사들 중 한 명 같았다. 장수의 명령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하는 일반 병사 말이다. 사장이나 직장 상사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 그런 느낌이었다. 내 업무가 아니라고 해도 내 회사에서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에 월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업무를 해야 했다. 그들에게 불평불만도 엄청 많았다.     


내 나이쯤이면 적어도 한 번은 사극 드라마를 한 번쯤은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을 하고 있다. 장수들은 병사들에게 나가 싸우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병사들은 나가서 적군 병사와 싸운다. 그렇게 병사들끼리 싸우다 창칼에 맞고 쓰러져 죽는다. 드라마 스토리 전개의 중심이 장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런 장면은 잠깐씩 보인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카메라에 잠깐 비치거나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고 죽어가는 그런 병사 같았다.     


오해는 하지 말자. 월급쟁이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흔들리고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거다. 결국 내 잘못이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제대로 된 고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생이 내 생각대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고 계획을 세워서 살아간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흔들리고 조종당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다.     


헤매다 돌긴 했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그때 인생 목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아는 형이 유통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에 상품을 포장해서 이틀 뒤에 납품해야 하는데 중국에서 상품이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납품 기한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 회사는 김포에 있었는데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상품을 보관해야 하는 창고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땅값이 저렴한 곳에 있었다. 6시쯤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일을 도왔다. 그렇게 일을 했어도 상품을 전부 포장하지 못했다. 포장된 상품들만 납품하기로 하고 나는 귀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다 내 핸드폰도 배터리가 방전돼서 켜지지 않았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였다. 차는 15년이 지난 차였다. 핸드폰도 사용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2년 정도 지나니 금방 방전됐다. 추운 날씨에는 금방 방전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형의 핸드폰으로 보험사에 전화해서 서비스를 받고 차의 시동을 켤 수 있었다. 하지만 내 핸드폰은 계속 충전해도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핸드폰이 켜져야 내비게이션을 보고 집에 갈 수 있었는데 핸드폰이 계속 꺼져 있어서 답답했다. 처음으로 형의 회사에 가본 것이었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없이는 집에 가는 길을 잘 몰랐다.


결국 집에 가다 보면 핸드폰의 전원이 켜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잠을 잘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표지판을 보기 위해서 느린 속도로 갔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표지판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표지판을 보면서 집에 가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길을 잘 몰라서 헤매긴 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는 지역 명칭이 나왔다. 그렇게 내가 어디쯤 왔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 핸드폰의 전원은 켜지지 않았다.     


길을 조금 돌긴 했지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가는 순간 핸드폰의 전원이 켜졌다.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었다.      


내 심장은 고장 난 걸까

그 일을 겪은 후 인생에서도 내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목적지가 있으면 중간에 헤맬 수 있어도 결국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목적지가 없었다면 내비게이션이 있든 없든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빙빙 돌다가 차의 연료가 떨어져 내가 알지도 못 하는 곳에 멈춰서 방황했을 것이다.      


그 후 한동안 내 인생 목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인생 목표를 찾고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책을 읽어보고 노트에 정리해가면서 생각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을 적어 넣어도 가슴 뛰는 목표가 없었다. 마치 내 심장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돈을 기준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가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 그 돈이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이전보다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노트에 적어놓고 읽어봐도 정말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에는 부모님이 아프실 때를 대비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는 것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내 가슴을 뛰게 할 수는 없었다.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생각하면 돈을 벌기 위한 동기 부여가 된다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왜 그럴까. 나에게는 욕심과 욕망이 없는 것일까. 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사람인 걸까.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다시 이것저것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인생 목표를 찾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노트에 적어놓고 읽어도 내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과 인터넷 사진을 찾아봐도 와 닿는 것이 없었다.     


36살부터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1년 전 하지 못 했던 일을 다시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방향을 정하는 것 말이다. 기한은 2019년 12월 31일까지로 정했다. 나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어떻게든 찾고 싶다. 다시 직장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 목표를 찾은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향으로 사는 것과 목표 없이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5살이 거의 다 지나가는 지금까지 목표 없이 살았다면 36살부터는 인생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살아온 35살까지는 제대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6살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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