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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May 24. 2021

조소앙의 생일에 대하여

삼균주의를 주창한 사상가이자 정치인인 조소앙(趙素昻).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그의 생일이 1887년 4월 30일이라고 한다(2021년 5월 24일 열람). 이 내용은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재되어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 '조소앙' 항목 중 (2021년 5월 24일 캡처)


그런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소앙 항목(임중빈 집필)에서는 1887년 4월 10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 두 자료를 비교했을 때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편집되는 위키백과보다는 집필자가 존재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의 기술이 좀더 옳은 기술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소앙' 항목 중

그렇게 넘어가면 끝날 일이긴 하지만 4월 10일이 맞다는 것은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역시 본인이 쓴 일기 속에서 생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조소앙은 1904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서 1912년에 메이지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본에 거처하였다. 덧붙이자면 소앙은 그의 호이며, 원래 이름은 조용은(趙鏞殷)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하여 그의 이름 호칭을 조소앙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어쨌든 조소앙의 유학생 시절에 집필된 일기가 바로 『동유약초』이다. 『동유약초』는 1979년에 발행된 『소앙선생문집』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1905년 4월 10일자 일기를 보면, 대한제국에서 온 특파 대사 일행을 만나러 간 일과, 성적표를 받은 일은 기록되어 있으나 생일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무슨 일일까? 사실 '4월 10일'이라는 날짜는 양력이 아닌 음력이다. 같은해 음력 4월 10일에 해당하는 1905년 5월 13일자 일기에는 '本日己之生日也'라고 적혀 있어, 과연 음력 4월 10일이 조소앙의 생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확히는 1887년 음력 4월 10일이라고 그의 생일을 적어두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한편, 1905년 생일날 일기에 따르면, 조소앙은 만리 타향에서 맞은 첫 생일에 그는 여러 사람들을 떠올리며 슬퍼졌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매년 일기에 자신의 생일을 어떻게 적었을지 궁금해지는데, 1906년 5월 3일(음력 4월 10일) 기사에는 축제일이라 학교를 쉬었다는 이야기밖에 적혀 있지 않다. 생일이라고 해서 꼭 일기에 무언가를 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휴일이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거나 무언가에 바빴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907년 5월 21일(음력 4월 10일) 기사에서는 '이날은 곧 나의 생일이다. 우리 가족이 나를 생각할 것을 생각하니 가족이 두 배로 그리워진다'고 하며 역시 울적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1908년에는 그의 생일이 양력으로 5월 10일이었다. 유학을 온 지도 어느덧 5년째가 되어가던 때인데다 모국의 상황이 어지러운 가운데 조소앙은 더욱 착잡한 심정으로 생일을 맞이한 것 같다. '옛 일을 더듬어 생각하니, 무슨 일을 달성했는가? 헛되이 세월만 낭비하고 오로지 어버이에게 근심만 끼치며 섬나라에 있다'고 하는 일기 속 문장을 읽으니,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내 일기장에 쓴 글인가 싶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나라의 정세가 수시로 바뀌고 참담해지는 가운데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괴로움은 결국 친구들과의 술 한 잔으로 이어지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괴로운 일에는 술이 따르는 법인가 보다. 이범승(李範昇) 등이 와서 자신을 초대하자 이범승의 하숙집으로 함께 간 그는 술을 마셨고, 밤에는 그들과 함께 활동사진을 보러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같이 한 잔을 마셨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한 생일날이라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쩐지 유학생 조소앙의 모습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조소앙의 유학 시절 생활상과 생각을 담아낸 일기 『동유약초』는 2015~2016년 무렵에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아직 번역본이 나온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1900~1910년대 재일본 한국유학생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한 만큼 언젠가는 많은 분들이 번역본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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