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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Jun 07. 2022

번역의 곤란함

어떻게 읽을/읽힐 것인가

승려 지엔(慈圓, 1155~1225)이 쓴 역사철학서 『구칸쇼(愚管抄)』는 박은희, 신재인, 유인숙, 박연정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전근대 일본의 문헌에 대한 번역물이 그렇게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오늘날 한국의 지식계에서 매우 반갑고도 소중한 작업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구칸쇼』 제7권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우선 번역본을 옮겨 본다.

국왕에서부터 비천한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국왕의 자리에는 군주로서의 처신을 훌륭하게 해 낼 사람이 올라야 한다. 일본국에는 황족 출신이 아닌 자를 국왕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법도가 신대(神代)부터 정해져 내려온다.

이 문장에 해당하는 일본어 원문을 이와나미 서점 『일본고전문학대계』판에 입각하여 옮겨놓는다.

其人ノ中ニ國王ヨリハジメテアヤシノ民マデ侍ゾカシ. ソレニ國王ニハ國王フルマイヨクセン人ノヨカルベキニ, 日本國ノナラヒハ, 國王種姓ノ人ナラヌスヂヲ國王ニハスマジト, 神ノ代ヨリサダメタル國ナリ.

한국어 번역은 대체로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스러운 문장 서술을 위하여 직역하지 않거나 의역한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 그러한 표현 중 하나가 '황족 출신이 아닌 자'로 번역된 '國王種姓ノ人ナラヌスヂ'이다. 직역하면 '국왕 종성인 사람이 아닌 혈통'이 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종성(種姓)'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설명이 필요해진다.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황족 출신'으로 번역하여 이해를 쉽게 한 것으로 보인다.


종성이라는 단어는 불교 경전에서 사용되는 말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 속 카스트에 대응된다. 이를테면 어떤 불교 경전에서는 4개의 '종성'이 등장하는데 이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를 가리키며, 왕의 종성 또는 찰리종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크샤트리아, 즉 왕과 장군이 나오는 계급이다. 불교가 탄생한 공간적 배경이 인도이다보니 인도의 카스트적 사회 질서가 불경에서도 서술되고,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다보니 '종성(種姓)'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일본 중세의 사람들은 불교 경전 속에 등장하는 '종성'이라는 단어를 가져다가 자신들의 사회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일본 중세 연구자들은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출신에 따라 계층과 지위가 고정된다는 중세의 신분관념을 '종성관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앞서와 같이 '국왕 종성'을 '황족 출신'으로 옮기게 되면 종성 및 종성관념과 관련된 내용이 사상(捨象)된다. 물론 일본에서 천황(국왕)이 되는 핏줄은 황족 출신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황족 출신'이라고 번역한다고 해서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종성'이라는 단어가 번역문에 빠짐과 동시에 불교, 그리고 인도 카스트와의 연관성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헌에 대한 상상력과 나름의 해석을 발휘하게 하는 요소가 번역자의 선택으로 인해 제한되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에 '종성'이라는 말을 직역하고 종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세한 주석을 달게 되면 번역문 자체가 번잡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역사 자료의 번역서는 누가 어떤 용도로 읽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일본 3대 사론서 중 하나로 알려진 고전(古典) 『구칸쇼』의 내용을 순수하게 파악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너무 자세한 역주(譯註)보다는 자연스럽고 유려한 번역이 더 적합할 것이다. 만약 『구칸쇼』를 일본 고대, 중세의 역사를 연구하는 문헌자료로서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일본어 원문을 보려고 할 것이며 한국어 번역본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도 있다. 다만,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연구자가 한국어로 번역된 해당 문헌을 참조할 수도 있고, 일본사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어 번역본이 더 접근하기 쉽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역시 원문의 표현을 가능한 한 충실히 반영하는 방식의 번역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문헌을 어떤 용도로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번역자는 그 문헌을 어떤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가? 직업과 업무의 성격 상 늘 번역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다시 한 번 번역의 곤란함을 곱씹게 된다. 결국 이렇다할 정답이 없는 넋두리 같은 문장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남겨둠으로써 관련된 분들과 고민을 함께 나누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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