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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May 11. 2021

아파트라 그런가?

사람 노릇하기



 일요일 아침 성당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곳이 있다. 옆 동 앞 작은 공간. 오래 전 처음 입주했을 땐 '공간'도 아닌,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곳. 그런데 지금은 작은 화단이 되었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난 괜히 마음이 쩌릿해진다.



 처음 여긴 아무것도 없었다. 보다시피 무엇이라 할만한 것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입주하고 몇 년이 지났을 때 저 앞에 한 할아버지가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뭔가를 하고 계셨다. 지나치다 보니 저 좁은 터의 퍽퍽한 마른땅을 작은 모종삽으로 파내면서 고르고 계셨다. 연세가 꽤 많이 드신 분이셨는데 잠깐 스친 뒷모습에서 외로움과 지루함, 단조로움이 조용히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오래오래 궁리를 하셨겠다 하는 생각을 내 맘대로 했었다. 


 그리고 지날 때마다 저곳은 조금씩 변해갔다. 우선은 콘크리트와 다를 바 없던 겉이 촉촉한 습기에 젖어 있었고 조금 더 지나니 여러 가지 모종이 따박따박 들어차기 시작했고 어떤 날은 파란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계신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많은 장면이 머리를 스치지만 난 한 번도 그 할아버지 얼굴을 바로 뵌 적이 없었다. 그냥 뒷모습으로만 아는 사이가 되어 간 것이다. 


 어느 사이 저 공간엔 풍성한 붉은 봉숭아꽃이 만발하기도 하고 또 어느 추운 날은 죄 시들고 마르고 얼어붙은 줄기들이 쳐져 있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다시 모종이 반짝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바뀌고 변하고 달라져 지금의 저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뒷모습조차도 못 뵌 지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누군가가 그 손길을 이어 가꾸고 있구나 짐작만 한다. 


 우리 집 맨 아래층은 십 년쯤 전에 삼대 가족이 이사와 여태 살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앞 베란다가 넓어 난 여기에 야외용 탁자와 의자를 놓고 커피도 마시고 저녁이면 술도 한 잔 하면서 잘 쓰고 있다. 여기서 노닥거리다 종종 1층 할아버지가 산책하러 나가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점차 느려지고 해를 거듭하면서 등이 구부정 해지시더니 어느 날 문득 그 할아버지 못 뵌 지 한참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윗집은 입주 동기인데 할머니 두 분과 아주머니 한 분과 장애인인 젊은이 한 사람이 가족이었다. 체구가 자그마하고 마르셨지만 나름 강단이 있어 뵈는 할머니가 주로 살림을 하셨는데 아파트에 장이 서면 깐깐하게 물건을 고르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종종 만나 인사하면 반가이 웃어 주시더니 어느 날 화장하고 나서던 날 세우고는 "곱게 꾸미니 이뿌구만~~ 좀 꾸미고 다니라~~ 남편도 자주 몬 보면서" 하시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제 남편 매일 보는데요, 했더니 그러냐고 왜 난 주말부부로 알았을까 하며 난처해하셨다. 그 할머니도 어느 순간 뵌 지 오래됐네 했는데 수위 아저씨께 여쭤 봤더니 두 분 할머니는 편찮으셔서 병원으로 가셨고 젊은 사람은 모르겠고 이젠 할머니 줄에 들어선 아주머니가 혼자 산다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집엔 새로운 주인이 이사를 왔다. 후다닥 도망가듯 이사하시는 바람에 남아 계셨던 할머니와 인사도 못했다.  


 11층엔 씩씩한 할머니와 조용하고 행동도 조심스러우셨던 할아버지 내외분이 사셨다. 항상 같이 다니시며 장도 같이 보시고 나들이도 같이 하시고. 참 보기 좋다 했는데 어느 날 살이 훌쩍 빠진 할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할아버지가 식사하시다 사례가 들었는데 그게 폐렴으로 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위로의 말은커녕 그냥 말도 안 나왔다. 벌써 며칠 됐어요 하시는데 어찌나 죄송했던지.


 사람 노릇을 못하고 산다. 아파트라 그런가? 아니다. 예전 처음 살던 아파트에선 종종 멀리 베란다 밖으로 '상중'이라고 쓰인 등이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바로 앞 집 젊은 부부가 문상을 오기도 했다. 할머니가 고령이시라 바깥출입도 안 하셔서 일면식도 없었는데 집에서 돌아가셔서 장례를 집에서 치르게 되니 바로 앞 집에서 당연히 알 수가 있어 문상을 온 것이다. 참 고마웠다. 아파트라도 그랬다. 그런데 이젠 편찮으시면 다 병원으로 모시게 되고 또 거기서 돌아가시니 그냥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모른 체 이별을 하게 된다. 이 동네 이사와 인사를 나누던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다 그렇게 이별을 하고 있다. 


 좋은 봄날, 남편과 베란다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바깥을 내다본다. 휴일이면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도 들리고 음식쓰레기통에서 몇 동 몇 호 쓰레기양이 얼마~~ 하는 기계음도 들리고 또 가끔 천천히 걸어가시는 어느 층의 할머니도 보인다. 그러면 우린 '사람 노릇 못하고 사네, 이렇게 사는 건 아닌데' 하는 얘길 저절로 하고 만다. 멀리 지방에 계시는 시어머니보다 더 자주 뵙고 웃음을 나누는 그분들과 그저 아무 기별도 없이 이별한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슬프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파트에 살아 그런 건 아니다. 이젠 이웃이 사촌이 아니게 되어 버렸나? 병원에서 돌아가시니 그렇겠지? 일부러 알릴 수 있는 통로도 없고 또 행여 부담을 주게 될까 걱정도 하고, 그런 생각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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