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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Sep 15. 2022

별 보러 갔다가 거미도 봤다

 지난주 남동생과 둘이 별 보러 갔다 왔다. 쓰면서도 웃긴다. 쉰 중반의 남동생과 환갑이 넘은 누나가 둘이서 강원도 봉평으로 별을 보러 간다니. 


 당일 아침까지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선물로 받은 갓김치를 나눠 먹으려고 동생네 들러 주차장서 올케를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월차로 집에 있던 동생이 같이 내려왔다. 김치를 건네주니 느닷없이 동생이 '누나, 별 보러 갈래?' 하고 물었다. '응? 별? 언제?' '좀 있다가 1시쯤' 

헐~~ 


 후다닥 집으로 돌아와 후다닥 이른 점심을 먹고 후다닥 짐을 쌌다. 난 속도전에 아주 능하다. 딱 세 시간 만에 다시 동생네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올케는 내일 출근해야 해서 못 가고 내 남편은 원래 어디 가는 걸 싫어해 가겠냐고 묻지도 않고 우리 둘이 출발한 여행길이었다. 그리고 우린 둘 다 별을 좋아한다. 돌아가신 아빠의 유전자겠지? 


 아빤 별을 참 좋아하셨다. 내겐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별, 오리온 자리를 알려주셨고 남동생에겐 안드로메다 성운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난 밤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면 항상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은 별이 얼마나 잘 보이나 하고. 아쉽게도 오리온 자리는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아니, 별이 잘 보이는 날이 별로 없다.


 남동생은 아빠가 쓰시던 천체망원경을 물려받았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 친정 옥상에서 놓고 쓰시던 건데 설치하기도 너무 번거롭고 같이 박자 맞춰 즐거워할 사람도 없어 (엄마는 이런 아빠 취미엔 전혀 무신경하셨다) 나중엔 그냥 상자 안에만 있다가 동생이 꼭대기 층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가져가 베란다 한쪽에 자릴 잡아 주었다. 이것저것 훨씬 성능이 좋은 부속들을 갖다 맞추고 카메라도 달고 하면서 종종 카톡으로 제법 볼만한 사진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가끔 '천문대로 별 보러 안 가련?' 하고 물으면 '좋지'만 하더니 이리 갑작스레 별구경이라니 뭔 바람이냐? 했더니 한참 별렀단다. 별을 못 보게 할 인공 불빛이 없는 곳, 망원경 놓을 자리가 괜찮은 곳, 방향도 맞아야 하고 앞도 트여야 하고. 거기에 날씨도 생각하고 목성이며 토성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짜까지 맞춰야 해서 오래 고심을 했다고. 오늘 아침에야 가야겠다 결심하고 잘 보일만한 농막을 예약할까 했는데 누나를 생각해 좀 비싼 펜션을 잡았다고 생색내면서 지금은 구름이 좀 있지만 밤엔 없어질 거라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간 공들였던 일들을 떠드는 동생 옆에 앉아 내다보는 고속도로 풍경이 참 좋았다. 얼마 만에 나가보는 밖인지! 


 2시간 반 걸려 도착해 짐을 풀었다. 이른 가을꽃도 피어 있고 풀냄새가 가득한 한적한 곳에 펜션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참 좋았다. 그런데 짐을 꺼내며 위를 올려다보다가 발견한 것! 


 거미다. 그것도 무진장 큰 왕거미! 


 그 큰 왕거미가 아주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다. 어릴 때 살던 집 마당에서도 근처 산에서도 거미는 참 많이 봤지만 그렇게 집을 짓고 있는 장면은 처음 봤다. 얼마나 열심히, 빨리, 근사하게 뱅글뱅글 돌아가며 방사형 모양의 집을 짓는지 짐 내리는 건 새까맣게 잊고 그것만 올려다보았다. 


 

처음엔 거미줄이 안 보이지만 20초쯤부터 바람에 날리는 거미줄이 보인다


 우와 우와~~를 되풀이하다 마저 짐을 나르고 펜션 안을 구경하고 짐도 다 정리하고 나왔는데 참 어처구니없게도 차 뒤를 지나다 그만 거미줄 아래쪽에 걸려 줄 하나를 끊어버렸다.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얼른 올려다봤더니 에구구 그 근사하던 거미줄이 지지대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반으로 접혀 버렸다.


 

  

 이런 만행이라니ㅠ.ㅠ

미안하다 할 수도 없고 내가 고쳐줄 수도 없고. 망연자실하긴 쟤도 마찬가지였는지 저 끝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가만있었다.


 저녁 먹으러 가자는 동생을 따라 게장산채정식을 맛있게 먹고 맥주랑 안주거리를 사서 돌아오면서도 마음은 간당간당했다. 어릴 때 거미라면 죄 독이 든 거 같아 그리 질색을 하면서도 친구들끼리 하던 말이 있었다. '거미는 절대 죽이면 안 돼'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린 그랬다. 죽이진 않았지만 집을 망가뜨리다니. 

 

 숙소로 돌아와 올려다보니 아유~ 이번엔 아예 거미줄이 거의 없어져버렸다. 길 다린 가로줄과 서너 개의 세로줄만 남긴 채 빈 허공! 지금 저 사진을 보면서 생각하니 자기가 다 먹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어두워지기 전에 동생이랑 마당에 망원경을 설치했다. 나야 아무것도 모르니 누나 이거 잡아하면 잡고 돌려하면 돌릴 뿐이었지만. 멀리 보이는 산 꼭대기의 나무 끝을 기준점으로 잡아 한참 이리저리 초점을 맞춰 놓고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리면서 우린 맥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하얀 망원경이 아빠가 쓰시던 것

 

 이 나이에도 생전 처음 하는 게 생긴다. 남동생이랑 둘이 여행하는 것도, 별 보러 멀리까지 온 것도. 처음 출발할 땐 조금 멋쩍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평소 서로 퉁퉁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다정한 게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다지 사이 나빴던 남매는 아니니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거미줄이 어찌 되었나 궁금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와!!! 정말 정말 놀랐다. 거미는 그새 집을 깨끗하고 완벽하게 새로 짖고 마치 자신의 솜씨에 스스로 감탄하듯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미줄은 안 보이지만 완벽하게 한가운데서 스스로를 뽐내고 있다

 하하하하하~~ 무거웠던 마음도 날려 버리고 저 놀라운 생명력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저 녀석이 왜 이렇게 좋은 거지? 난 벌레라면 개미도 싫어하고 나방도 싫어하고 벌도 무서운데, 그래서 절대로 시골에선 못 산다고 생각하는데. 나이가 들어 그러나? 점차 마음 붙일 곳이 없어져 그러나? 어쨌든 대왕거미 만만세다.


 시골의 어둠은 무척 빠르게 닥쳤다. 순감 깜깜해진 밤하늘 남쪽에서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반달이 떠올랐다.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저 달 때문에 별 보기 힘들겠네' 하는 동생 말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달이 보름달이 되었을 때 방송에서 백 년 만에 보는 큰 보름달이라고 했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커다란 달 속의 분화구도 보이고 울퉁불퉁한 표면도 자세히 보였다. 아~~ 신기하다~~


 좀 있으니 토성이 떠올랐다. 망원경 속의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토성은 허리에 띠를 두르고 빛을 내고 있었다. 갈릴레이는 저 띠가 토성에 귀처럼 붙은 거라고 생각했단다. 북두칠성도 나타났고 북극성도 보였고 제주에서 만났던 W자의 카시오페아도 다시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드디어 밝은 목성이 떠올랐다. 


 "단연코 목성이 최고야" 하는 동생의 감탄사에 걸맞게 정말 밝고 찬란했다. 망원경 속의 목성은 줄줄이 세 개의 위성을 달고 있었다. 원래는 네 갠데 하나는 잘 안 보인단다. 토성에 띠가 있고 목성이 어떻게 생겼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면 참 신기하고 놀랍다. 학교에서 한참 이런 태양계와 우주에 대해 공부했을 때 딱 한 번이라도 직접 하늘을 제대로 봤다면 우리가 억지로 하는 공부가 다르게 느껴졌겠지? 망원경까지 동원할 순 없었다 해도 다 같이 운동장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별은 뭐고, 왜 색이 다르고, 저 별빛은 몇 백 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단다 하는 얘기를 들었더라면~ 나이 들어 경험이 늘어날 때마다 책으로만, 글로만 배웠던 지식이 참 안타까워진다. 


 둘이 와와~~ 거리며 별을 보다 맥주 마시다 옛이야기하며 깔깔거리다 밤 12시를 넘겼다. 북쪽 하늘에선 밝게 선을 그으며 별똥별이 지나갔다. 별똥별은 참 오랜만에 보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애잔하다. 이젠 누군가가 하늘나라에 가서 별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아는데, 과학적인 이유도 아는데 뭐든 '끝'이라는 건 그리 안타까운 일인가 보다.


 1시쯤 되니 서쪽 하늘에서 우르르 구름이 몰려왔다. 화성을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이게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는 데다 산 속이라 금방 축축하니 물기가 내려앉아 할 수 없이 망원경을 접고 숙소로 철수. 집 안에서 계속 떠들다가도 속이 상해 잠깐잠깐 밖으로 나가보던 동생이 구름이 다시 걷힌다며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망원경을 다시 세웠다. 끝내 짱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볍게 떨리며 불타는 듯한 모습의 화성도 결국 봤다. 


 3시가 되어서야 우리 별 보기 여행은 끝이 났다. 3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후다닥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휴게소에서 아침도 먹고 커피도 두 번이나 마시고 동생네 주차장에 도착해 내 차를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제 이 길을 올 때와 뭔가 많이 바뀐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참 다르다고 생각한 동생이었는데 이리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우린 참 많이 닮아가고 있었다.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누나 그게 잘 안되네. 집에 있으면 이젠 나가기도 싫고 뭘 하기도 싫고 그냥 눌러앉게 돼. 그래서 날 좀 닦달해보자 작정하고 별 보러 간 거야. 안 그러면 자꾸 시시하게 살게 될 것 같아서" 호기심 많고 재주 많은 막내라 내겐 젊음의 잣대 같았던 동생이었다. 그 동생이 요즘 내가 절실히 고민하는 문제와 똑같은 것에 꽂혀 있었네. 특별히 하는 생산적인 일이나 재미있는 일 없이 집과 마트만 왔다 갔다 하다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그동안 참 많이 우울했다. 우린 둘 다 잠자는 게 억울하고 우린 둘 다 다섯 시간 정도밖에 못잔다. (잠자는 시간이 너무 짧아 걱정인데 내력이구나 하고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로) 이번에도 3시에 자서 6시에 동시에 눈을 떴다. 우린 둘 다 '혼자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잘한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소릴 듣다가 빨간불에 섰을 때 카톡을 보냈다.

-내가 실수했네. 너 짐을 같이 올려주고 왔어야 했는데 그냥 와 버렸다. 미안해서 어쩌냐? 

-뭔 말씀을. 혼자 잘해

 

 별 예길 잔뜩 해놓고 죄 거미 사진만 올렸다. 별이 좀 더 크게 보이면 찍어야지 했다가 구름이 자꾸 가리는 바람에 결국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대신 전에 동생이 보내준 사진이라도 올려야지.

쬐끄맣고 예쁜 토성. 정말 귀가 달린 것 같다
목성과 세 개 위성. 한 개는 잘 안 보인다
확대해 본 목성. 밤하늘 왕 스타! 가스로 이루어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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