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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Jan 10. 2024

이 산이 아닌가벼

길치 남편과 사는 풍경

 6개월에 한 번씩 안과에 간다. 무려 25년 정도 다녔다. 

처음엔 심각한 증상이라 겁을 먹고 우울한 얼굴로 갔다 왔다 했는데 안정기에 접어든 후론 정기검진으로 슬렁슬렁 다닌다. 게다가 담당의사가 남편의 6촌 형님이시라 조금 더 편하긴 하다. 물론 그래도 가기 싫다. 병원 가는 게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보통 다니는 지하철 역과는 반대편에 있는, 버스가 많이 다니는 쪽으로 나가 앱을 보고 기다리다 5분 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탔다. 항상 널널해 마음 편하게 타서 반자리에 앉았는데 에구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 쉬운 걸 왜 못하는 걸까? 


 두 달쯤 전 남편도 이 버스를 타러 나왔었다. 남편은 1년에 한 번 같은 병원, 같은 의사에게 정기검진을 받는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가벼운 증상이 있어 형님을 찾았는데 그 후로 꼬박 1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라 해서 에이~ 가기 싫다 하면서 다니고 있다. (이왕이면 날짜를 맞춰 1년 에 한 번은 같은 날에 가자고 나한테 말한 적이 있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냥 따로 다닙시다~~) 집을 나서는 뒤에다 대고 저쪽으로 가서 5번 버스 타고 병원 앞 정거장에 내려서 가셔~~ 하고 말했다. 몇 번 다녔으니 알아서 잘 가겠지 하는 마음에 더 이상 말을 안 했는데 한참 있다가 전화가 왔다. 병원에 도착했다고.

나간 지가 언젠데 이제야 도착한 거냐니까 멈칫한다. 에구 또 사고를 쳤구만.

 

 들어본 즉, 정거장에서 내가 일러준 5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마을버스 5번을 탔다는 거다. 헐~~~

그랬더니 그 마을버스가 우리 동네를 빙 둘러 우리 집 바로 뒤 지하철 정거장에 내려주더란다. 당연하지, 아니, 그 마을버스를 한 두해 탔나!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내내 탔던 건데 요즘 외출을 좀 안 했다고 새카맣게 잊고 그걸 타다니! 

 그래서 어떻게 했어? 했더니 그냥 지하철을 타고 병원 멀리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고. (이 방향은 좀 돌아서 가지만 회사 쪽으로 가던 길이라 익숙하다)


 남편은 형편없는 길치다. 보통 길치가 아니라 진짜로 어처구니없는 길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과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집에 인사 가자 해서 따라나섰다. 그런데 근처 지하철 역에 내리더니 공중전화에서 작은집으로 전화를 하는 거다. 도착했으니 데리러 오라고. 처음 오는 거냐니까 아니란다. 십여 년 전부터 몇 번 왔었단다. 

-그런데 왜 전화를 해요? 

-길을 몰라. 

-왜 몰라요? 

-아, 그 집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해서 못 찾아. 골목골목 한참 올라가야 해.

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우릴 데리러 온 남편 사촌 동생을 따라 올라가 보니 골목이 몇 번 꺾이기도 하고 좀 멀기도 했지만 다시 못 찾아올 길은 아니었다. 참 이상하네 생각했지만 금방 잊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명절에 작은집에 다시 갔는데 또 전화를 하려길래 말렸다. 내가 찾아갈 수 있다고. 안된다는 남편 말을 무시하고 집을 잘 찾아 올라갔다. 전화를 기다리던 작은집 식구들은 오히려 나더러 어쩌면 한 번 와보고 용케 찾아 올라왔다고 신기해했다. 


 그 뒤로 오래오래 길치 남편의 행적을 보며 살고 있다. 지하철 거꾸로 타기는 다반사고 정거장 잘못 내리기도 드문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방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 그럴 때마다 번번이 가는 버스며 내려서 길이며를 내가 죄 찾아 알려주고 확인하고 다짐시켜 나가게 했다. 그래도 종종, 심심찮게, 잊어버릴 만하면 또다시 엉뚱한 곳에 서서 헤매곤 한다. 희한한 게 이 정도 악성 길치고 그 탓에 수고스러운 일을 당하고 마누라에게 지청구를 먹으면서도 미리 확인을 해보거나 가는 곳에 있는 사람에게 알아보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면서 못 찾고 헤매게 되면 화는 또 얼마나 내던지. 

 

 한 번은 화성 근처에 있는 회사로 출장이 잡혔다. 시외버스를 타고 (남편은 운전을 안 한다, 정말 다행이다)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가면 된다길래 그럼 쉽겠구나 했다. 시간이 지나 전화가 왔다.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기사도 그 회사를 모른다 하고 택시 내비에도 그 회사가 나타나질 않고 기사가 지도까지 잘 못 본다는 거다. 그걸 집에 있는 내게 허둥대며 하소연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택시 안의 두 사람이 우왕좌왕하는 중인데 어쩌랴. 주변에 보이는 큰 건물이나 상호를 말하라 했더니 어어~~ 하다가 불러줬다. 인터넷 지도에서 그 회사들을 찾고, 가는 회사를 찾아 직진~~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 그다음에 좌회전하면서 장거리 인간내비 노릇을 했다. 아, 이제 보인다 하고야 전화를 끊었다. 못 찾겠으면 그 회사에 전화해 알려달라 하지 어쩌자고 집으로 전화해 그 난리를 치는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니가 그리 잘해주니 니 남편이 뭐 하러 애를 쓰겠냐고 내 탓이란다. 

끙~~~


또 한 번은 버스에서 내려 회사를 찾아 가는데 머릿속의 길을 따라 아무리 가도 그 회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전화를 했다. 할 수 없이 다시 근처 알아볼 수 있을만한 곳 이름을 물어보고 카카오 지도를 펴서 이리 가고 저리 가셔하고 말해줬다. 어느 길 모퉁이를 꺾고야 아, 이제 알겠다 하면서 넌 어쩌면 멀리서도 길을 그렇게 잘 찾냐 하길래 '내가 CCTV로 보고 있잖아, 위로 보고 손 흔들어봐' 했더니 정말 손을 흔들었단다. 그러고야 아차 싶었는지 '에이~~ 속았네~'  하면서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고집은 센지 둘 다 모르는 곳 예를 들어 외국에 나가면 시원하게 '이쪽이야!' 는 또 잘한다. 아냐 저쪽이지 하면 뭔 소리냐고 이쪽이라고, 네가 착각한 거라고 잘난 척도 한다. 용감하기까지 해 '이 버스야!' 하고 덜렁 올라타고 '저 기차야!' 하고 앞장선다. 


 이십 년 전엔 회사에서 단체로 관악산에 갔다 오더니 산이 정말 좋더라고 다음 주말에 같이 가자 했다. 좀처럼 나들이를 안 하던 사람이 웬일이래 하고 산이라면 질색을 하면서도 아들이랑 따라나섰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하면서 앞장서서 가는 남편 뒤를 따라 한참 올랐는데 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그걸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남편이 말했다. "이상하네. 지난번엔 이런 길이 없었는데~~"

그야말로 '이 산이 아닌가벼'의 실사 버전을 경험한 것. 삼성산으로 가려했는데 연주암으로 올라간 거라나 아니 그 반대라나 뭐라나~~ 아니 가려던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단다. 그냥 관악산이었다나 뭐라나 아이구.

저 산중 어딘가겠지

 검사를 두 가지 하고 육촌 아주버님이기도 한 담당의사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인사도 드리고 이젠 손주를 봐야 할 나인데 하는 위로에 아직 장가도 못 보냈는데 할머니 소릴 억울하게 듣고 산다는 하소연도 하고 요즘 젊은 애들이 저 편하려고 결혼을 안 하더라는 말씀도 듣고 병원을 나섰다. 


 돌아오는 차를 타려고 버스 정거장에 가니 또 에구구~ 싶다. 내 생각대로 가는 버스, 오는 버스 정거장은 중앙차선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횡단보도 중간에서 왼편으로 가면 오던 길 버스 정거장, 몇 걸음 더 가 오른쪽으로 가면 집으로 가는 버스 정거장. 나처럼 병원을 나서던 남편이 전화를 했었다. 집으로 가려는데 버스를 어디서 타냐고 묻는다. '거긴 중앙차선제 정거장 양쪽에, 오가는 버스가 나뉘어 같이 있으니  잘 찾아보고 5번 버스를 타고 와. 집 앞 정거장 내리면 김밥집 있잖아 거기서 김밥 좀 사 오고' 찾아보겠노라는 남편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문득 좀 편하게 해줘야지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 '미리 주문해 둘게 무슨 김밥 먹을래?' 했더니 '뭔 김밥?' 그런다. 

-아니 방금 김밥 사 오라고 부탁했잖아,

-언제 그랬어? 그건 그거고, 착각해서 내려가는 버스 정거장으로 왔어. 올라가는 버스 타려니까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해서 못 가겠어. 그냥 아래로 가는 버스 타고 가서 지하철 갈아탈래.

-아니 뭔 소리야, 횡단보도 중간에 양쪽 정거장이 다 있다니까.

-아냐 없어.

-아이구 알아서 하셔.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참 있다 집에 돌아온 남편 손에 까만 김밥 봉지가 들려 있었다. 길치병은 좀처럼 없어지지도 좋아지지도 않지만 버럭 하고는 삐져 있던 성질머리는 많이 나아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 같음 정신없는 판에 그따위 심부름까지 시켰다고 내내 새파래 있었을 텐데.


 글 쓰다 그 산이 아닌 산에 올라간 기억에 새삼 끌끌 혀를 차고 있는데 곁에서 느긋하니 남극의 펭귄이 나오는 다큐를 보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난 펭귄으로 태어났음 금방 죽었을 거야. 먹이 찾으러 갔다가 길을 못 찾아 혼자 헤매다가~~" 

아이구, 아니 다행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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